[권동철의 한국현대미술脈-理氣와 추사 김정희:작가篇] 서양화가 이태현③‥중력과 장력의 기하학 한국적 혼(魂)의 숭고미 [Lee Tae Hyun,이태현 미술가,이태현 작가,이태현 화백,경북예천출신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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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8620-1, 72.7×60.6㎝ Acrylic and oil on canvas, 2026 재(再)제작. 사진=권동철.
“지인(至人)은 자기 자신에 얽매임이 없고, 신인(神人)은 일의 결과에 매이지 않고, 성인(聖人)은 이름에 매이지 않는다. 故曰: 至人无己, 神人无功, 聖人无名. 1)”
이태현 미술가(李泰鉉,Lee Tae Hyun,1940~)의 현수 곡선(catenary,顯垂曲線) ‘Space(공간)’ 연작은 1970년 중반 구상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80년에 본격 발표했다. “현수 곡선이 내 예술인생에서 대중에게 알리는데 효과적이었다. 내 논리 중에 가장 대중적인 작품 2)”이라고 화백이 회고할 만큼 주목받은 작품이다.
◇순리와 변화 눈에 보이는 자연현상
화면은 어느 새벽녘 어둠에서 밝아지는 세상, 다시 또 어두워지는 상(象)을 발현한다. 검은 공간을 밀치고 내려오는 푸르스름한 사이 만물의 명암과 순환질서를 집약시킨 총체이다. 현수 곡선은 중력과 장력 두 상반되는 힘의 균형이다. 때문에 자연의 원리가 스스로 알아낸 가장 꾸밈없는 선, “확실히 눈에 보이는 자연현상이다. 3)”
이것을 이태현 작가는 평면회화에서 오묘한 공간을 생성하고 순리와 변화를 통한 우연성을 관통하며 자연과 인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근원적 흔적을 부여하는, 반전으로 제시한다. “소요(逍遙)는 소요(消搖)와 통하니 한가한 만족함이고, 유(遊)는 유(游)와 통하니 ‘놀음’의 뜻이다.(…)마음이 순연한 천지자연과 정신을 교류하며 노니는 유토피아의 세계를 우리에게 알리고 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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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9110015, 162.2×130.3㎝ Acrylic and oil on canvas, 1991. 사진=이만홍. |
◇현수 곡선의 ‘뒤집음’ 궤적의 현상학
이태현의 현수 곡선은 위는 어둡고 아래는 밝게 표현되어 있는, 도치(inversion)이다. 부연하면 안정적으로 늘어져 있는 자연현상을 ‘뒤집음’으로써 시각적 긴장을 촉발시키고 추상적 사상(寫像)으로 진입하게 하는 통로로 이끌었다.
이 낯섦의 코드는 뒤집힌 질서라는 의식의 확장, 자유로운 예술의 착상에 내재된 창작 고통이 스민 존재론적 구조이기도 하다. 또한 작가가 인위적으로 선을 직조하는 경험성, 물질의 장력이 상호 교섭하여 가시화된 늘어진 스트로크라는 현상학(phenomenology) 적 산물이기도 하다.
“존재에 갇혔다가는 언젠가는 빠져나와야 할 것이다. 존재에서 빠져 나왔으면, 그러자마자 언제나 되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리하여 존재에 있어서는 일체가 순환이며, 일체가 둘러감이고 돌아옴이고 계속되는 담론이며, 일체가 이어지는 체재(滯在)들이며, 일체가 끝없는 노래의 후렴이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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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9110013, 162.2×130.3㎝ Acrylic and oil on canvas, 1991. 사진=이만홍/1991년 금호미술관 이태현 개인전 도록 촬영=권동철. |
◇혼(魂)이 깃든 결정체 직관의 체계화
색채를 반복하여 올리는 것은 깊이감도 염두에 두지만 자신의 현수 곡선을 어떻게 공간의 영역으로 구현해 낼 것인가에 대한 치밀한 탐구성이 그 이면에 있다. 즉 감각과 영감의 사유에 중점을 두고 풀어가는 단초에, 색채가 연동된다는 점이다.
“바탕은 처음에 흰색으로만 계속 올리는데 밑칠을 최소한 열 번 이상 색칠한다. 그 위에 검정이나 갈색 등으로 올리는데 그것도 다섯 번이 넘게 축적한다. 비로소 그때 소기의 안정된 공간이 나온다. 그냥 슬쩍 지나가는 게 없다. 6)”
작가는 힘과 긴장, 질서와 균형, 변화와 불변 등 우주자연계의 역학 요소들이 겹겹 색채를 쌓는 작업에서 배어 나온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예술작품의 경우에 마음속에 있는 의미와 경험 속에서 생성되는 의미들은 매체로 사용되는 재료 속에 침투하며 예술작품을 통해 구체화된다. 이 점이 바로 심미적 경험의 중요한 특성이다. 7)”
발색은 색채가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 지점으로 현수선이 언제 어느 지점에서 형태를 드러내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흰색과 반응하는 다른 색채를 다시 얇게 여러 번 칠하는 과정에서 발색되는 것을 보면서 멈추는 시점 그때가 나중에 현수 곡선이 올라갈 지점이 된다.
만약 거기서 두껍게 칠해버리면 곡선이 들어갈 여지가 없어진다. 그러니까 “현수 곡선이 들어갈 얇게 칠한 상태 즉 시각적으로 봐서 판단이 되고 곡선이 들어 갈 공간을 설정해야 하는 그것은 순전히 나의 체험과 직관으로 8)”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찰나는, 작가의 감각적 인식이 탐미적 체험으로 체계화되고 물리학적 역학이 연착륙하는 시각, 논리, 감각이 한 덩어리로 판단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우리는 운동이 시작되는 바로 그 순간, 즉 외적 변화와 우리의 여러 심적 상태 중의 하나와의 동시성을 유의(留意) 한다는 것이다. 또한 운동이 끝나는 순간, 말하자면 또 하나의 동시성을 유의한다. 9)”
하여 고요한 심연의 바다 지각판이 부딪히며 거대한 힘으로 돌변하듯, “어느 정도로 휘어진 공간 속에 다른 사물이 위치할 때, 그 사물이 차지하는 장소로서의 공간 자체도 함께 휘어진다.9)” 아인슈타인 중력처럼 “그것은 더 이상 거리, 선, 형태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실상 색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10)”
그리하여 비어있는 듯한 깊이의 공간감 그리고 양 끝이 서로 당기는 타이트한 적요의 긴장감은 이태현 현수 곡선이 화면에서 어떤 방식으로 실재하는지를 시각화시킨 혼이 깃든 결정체이기도 하다.
“하나의 현상으로 나타나는 모든 것은 결합 가능한 근원적 분리를 암시하고 있거나 아니면 분리 가능한 근원적 통일을 암시하고 있으며, 그러한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결합된 것을 분리시키고 분리된 것을 결합시키는 것이 자연의 생명이다. 이것은 영원한 수축과 팽창, 영원한 결합과 분리이며, 우리가 그 속에서 살고 활동하며 존재하는 세계의 들숨과 날숨이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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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9110017, 162.2×130.3㎝ Acrylic and oil on canvas, 1991. 사진=이만홍/1991년 금호미술관 이태현 개인전 도록 촬영=권동철. |
◇조화로움의 수행성 평면회화의 격상
작가는 테이프 작업에서 선(line)을 굉장히 중시한다. “자연현상 같은 자연스러운 결 그대로의, 12)” 흔적으로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주역(周易)의 “자연형상(自然形相), 곧 형상원리와 작용하는 자연이 우주의 영혼이라는 것 13)”과 같은 맥을 잇고 나아가 조화로운 미덕의 수행성도 요구된다.
“함(咸)의 길은 ‘화이불류(和而不流)’하는-조화를 이루되 휩쓸리지 않는-길이고, 항(恒)의 길은 ‘불류이화(不流而和)’하는-휩쓸리지 않되 조화를 이루는-길이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두 길이 정반대의 길이긴 하지만, 예(禮)를 다하는 군자에게는 어쩌면 비슷한 길일 수도 있는 것이다. 14)”
현수 곡선은 만물을 이어주며 균형을 이룬다. “리기(理氣)는 일물도 아니며 이물도 아닌,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一而二二而一)’ 15)”것으로 존재하는 것과 같다. 이 관점에서 아치(arch)의 현수 곡선 역시 중력이 기운생동(氣韻生動) 하는 자연의 질서를 2차원 평면회화 공간에서 표상해 내고 있는, 미학적 가치의 격상이라는 당위성이 부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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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9110016, 162.2×130.3㎝ Acrylic and oil on canvas, 1991. 사진=이만홍/1991년 금호미술관 이태현 개인전 도록 촬영=권동철. |
◇괴(怪) 미학과 도치, 힘의 메커니즘
이태현 작가는 기존의 현수 곡선 이른바 순응의 기하학을 뒤집은 팽팽한 긴장의 선으로 묘사해 낸다. 이 뒤바꿈의 의미는 무엇일까. “모든 대상은 이종적이다. 하지만 대상의 두 반쪽은 서로 닮지 않았다. 한쪽은 잠재적 이미지이고, 다른 한쪽은 현실적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그 둘은 짝이 맞지 않는 불균등한 반쪽들인 것이다.
(…)서로 닮지 않은 두 반쪽은 어떻게 서로 맞물리는 것일까? 질과 종들은 어떤 현실적 양상을 통해 비율적 관계의 변이성들을 구현한다. 또 유기적으로 조직화된 부분들은 그에 상응하는 독특성들을 구현하는 16)”과정으로써 “잠재적인 것의 실재성(ens omni modo……) 17)”을 드러낸다.
이 뒤집음으로써 자연계 질서의 참신한 재구성을 이뤄낸 미의식은, 원초성 강한 고예(古隷)의 결구에 매료된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가 조선 후기 서단의 정형화된 서체의 주류 속에서 ‘괴(怪)’ 미학을 표출했던 그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과 조우한다. 획(劃)과 여백 사이 창출되는 힘의 메커니즘을 끈질기게 온축(蘊蓄) 하며 본질에 다가가려 했다는 점에서 맥이 통하는 것이다.
“요구해 온 서체(書體)는 본시 처음부터 일정한 법칙이 없고 붓이 팔목을 따라 변하여 괴와 기가 섞여 나와서 이것이 금체(金體)인지 고체(古體)인지 자신 역시 알지 못하며 보는 사람들이 비웃건 꾸지람하건 그들에게 달린 것이니 풀이를 하여 조롱을 면할 수도 없거니와 괴(怪)하지 않으면 역시 서(書)가 될 수도 없으니 말이지요. 18)” 세상의 비웃음에 초연하고 추사체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무애(無碍)의 필세인 것이다.
한편 화실 창(窓)으로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와 노(老) 화가의 백발이 허공에 거침없는 일획(一劃)을 그리듯 휘날렸다. 그때 추사의 괴(怪)가 오버랩되는 것은 무슨 연유인가. 이태현 작가의 색의 운용, 사의(寫意)의 정신성, 세계관이 존재의 본질에 관한 스펙트럼을 강렬하게 드러내고 읽히는 힘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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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8121, 112.1×145.5㎝ oil on canvas, 1981. 제30회 국전 특선 작품. 호암미술관 소장. 사진=이만홍. |
◇충돌과 역설 신체성과 감각의 현대성
화면의 휘어진 선은 겹겹 색을 올린 위에 인위적인 테이프 작업으로 만든 것이다. 현수 곡선처럼 보이도록 물질을 의도적으로 컨트롤하는 것으로써 색채와 테이프라는 물질 사이에 작가의 감각이 개입된 산물이다.
이 테이프 작업은 중력에 적응하는 장력(Tension)의 밸런스 등 “곡선을 틀림없이 현수곡선이 되도록 테이프를 조작해야 19)”하는 팽팽한 긴장의 과정이기도 하다. 테이프를 붙이고 떼어내는 동작과 자국이 남긴 흔적은 인공적인 것이 자연성의 현수 곡선에 가장 근접한 상태가 되도록 해야 되는 난도 높은 감각을 요구한다. 역(逆)으로 이러한 조율이 되지 않을 경우 작가가 원하는 선이 나오지 않는다.
부연하면 이러한 조작 과정에서 작가의 몸은, 기다림의 때를 포착해야 하고 재료의 저항에 직면하기도 하는 등 몸과 물질이 타협해 가는 체화의 수행성을 추동(推動) 한다. 따라서 수평선, 지평선 아래로 점점 밝아졌다가 어두워진다거나 하는 변환의 재구성은 충돌과 역설의 재발견과 다름이 없다.
이것은 “눈으로 보는 시각도 지적인 시각도 아닌 제3종의 시각, 이름하여 육화된 시각(Incarmated Vision) 20)”으로 “나의 신체가 세계를 파악 21)”하는 심원한 층위(層位)와 맞닿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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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송(赤松) 아래에서 사색에 잠긴 이태현 미술가. 사진=권동철 9.2026. |
◇한국적 조형의 발견 그 집념의 화두
이태현 현수 곡선 스페이스(Space) 시리즈는 늘 새로운 질서와 조화의 밸런스를 잉태하는 우주 삼라만상 관계론을 집약시킨 것이다. “자연은 뭇한 변화가 있는데 그것을 시시때때로 느끼고 하는데도 내 작업방법이 유효했다는 것을 느낀다. 22)”라고 화백은 토로했다. 그러면서 “한국성은 상당히 다르다. 기물만 하더라도 한국과 일본, 중국의 것이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나는 한국적인 그런 선에서 착상한 것 23)”이라고 피력했다.
이태현 현수 곡선은 단순하게 그려낸 궤적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존재의 고고한 정신성을 관통해 온 사찰의, 우리의 선조들이 가문의 과업에 고뇌하며 지혜를 모았던 공간 그 한옥의 처마, 자식들을 위해 온몸으로 헌신했던 어머니의 닳고 닳은 헤진 버선코에 이르기까지 우리 산하에 터를 잡고 살아 온 한민족의 맥박을 오늘에 잇는, 그러한 선이다.
그것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 확장한 이 매혹의 혁신은 한국 현대미술의 방향타를 잡아끄는 담론으로 부족함이 없다 할 것이다. 또한 세월의 깊이에 번뜩이는 형형한 노(老) 화가의 눈동자는 집념의 화두(話頭)가 무엇인지 묵언의 울림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한국의 미술은 언제나 담담하다. 그리고 욕심이 없어서 좋다. 없으면 없는 대로의 재료, 있으면 있는 대로의 솜씨가 별로 꾸밈없이 드러난 것, 다채롭지도 수다스럽지도 않은 그다지 슬플 것도 즐거울 것도 없는 덤덤한 매무새가 한국 미술의 마음씨이다. 24)”
[참고문헌]
1),4)莊子(장자), 逍遙遊(소요유) 篇, 송영배 역주, 비봉출판사.
2),3),6),8),12),19),22),23)이태현 미술가, 나의 현수곡선과 한국의 선, 2026.
5)공간의 시학(La Poétique de l'Espace),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지음, 곽광수 옮김, 동문선.
7)경험으로로서 예술(Art as Experience), 존 듀이(John Dewey) 지음, 박철홍 옮김, 나남.
9)앙리 베르그송(H.Bergson), 시간과 자유의지(Essai sur les Données Immédiates de la Conscience), 정석해 譯, 삼성출판사.
10)메를로퐁티의 ‘눈과 정신’ 강해-회화의 눈, 존재의 눈, 조광제 지음, 이학사.
11)색채론(Zur Farbenlehre),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괴테 ‘서동(西東)시집-詩 ‘은행잎’, 장희창 옮김, 민음사.
13)무한자와 우주와 세계·원인과 원리와 일자(De l’infinto, universo e mondi/De la causa, principio e uno),조르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 지음, 강영계 옮김, 연암서가.
14)주역독해, 함(咸)·항(恒)-불변응만변(不變應萬變) 中, 강기진 지음, 김영사.
15)율곡 이이, 예문동양사상연구원. 황의동 편저, 김종문-율곡의 리기 체계에 대한 연구, 성학집요(聖學輯要) 궁리장(窮理章) 中, 예문서원.
16),17)차이와 반복(Différence et Répétition), 질 들뢰즈(Gilles Deleuze)지음, 김상환 옮김, 민음사.
18)추사 김정희, ‘완당전집 제5권 서독(書牘), 사람에게 주다[與人], 한국고전번역원 신호열 譯, 1988.
20),21)메를로-퐁티의 신체 현상학, 류의근 지음, 세창출판사.
24)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최순우 지음, 학고재.
[글=권동철 미술전문기자·전문위원. 10월8일 2026. 인사이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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