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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츠카와 난학(藤塚と蘭學)]추사박물관 개관10주년기념 특별기획전, 6월3~8월6일,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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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지츠카와 난학 ( 藤塚と蘭學 )  전시전경 . 사진 = 권동철 .  근대학문으로서 동양학을 연구한 후지츠카 가문   19 세기 초 동아시아에 끼친 추사 김정희 (Kim Jeong-hui, 秋史 金正喜 ,1786~1856) 학예의 대업연구에 일생을 바친 일본역사학자 후지츠카 지카시 (Hujitsuka Chikashi, 藤塚鄰 ,1879~1948) 가문의 자료중심인 ‘ 후지츠카와 난학 ( 藤塚と蘭學 ) ’ 전시가 오는 8 월 6 일까지 과천시 ‘ 추사박물관 개관 10 주년기념 특별기획전 ’ 으로 성황리 전시 중이다 .   ‘ 난학 ’ 은 에도시대 ( 江戸時代 ) 서양의학과 과학지식을 연구한 학문으로 후지츠카 가문은 그 영향을 받았다 . 후지츠카 가문은 일본 동북 미야기현 ( 宮城県 ) 시오가마시 ( 塩竈市 ) 에 있는 시오가마신사 ( 塩釜神社 ) 의 신관 ( 神官 ) 집안으로 , 후지츠카 치카시에 이르러 12 대째 계승되었다 .   =( 왼쪽 ) 후지츠카 치카시의 논어총설 자필원고와 논어연구서 . ( 오른쪽 ) 中庸研究 ( 중용연구 ) 후지츠카 치카시 , 1906~1908, 필사본 2 책. 사진=권동철. △ 제 1 부 난학 ( 蘭學 ) 과 후지츠카 가문 = 에도중기 유학자 오규 소라이 ( 荻生徂徠 ,1666~1728) 의 저서 , 유학자 고가 세이리 ( 古賀精里 ,1750~1817) 의 대련 , 네덜란드어사전 화란문전자류 ( 和蘭文典字類 ), 지리의 인식변화를 보여주는 ‘ 일본수토고 ’ 와 지도 , 홍도관기 ( 弘道館記 ) 탁본 등을 볼 수 있다 . 또한 18 세기 서예가 동강원린 ( 東江源鱗 ,1732~96) 이 쓴 ‘ 신수정 ( 神樹亭 , 후지츠카 구저택 ) 과 염조신사기 , 신학변의 , 등총식부대인전 등 고서 그리고 재축이방창 ( 齋祝弐方暢 ), 조서가 ( 嘲書家 ) 7 언 시 등 시문 , 금석문과 궁시도 , 사자무도 등을 관람 할 수 있다 .   △ 제 2...

[후지츠카와 난학(藤塚と蘭學)]추사 김정희와 후지츠카 치카시, 민족과 시대를 초월한 숭고한 만남[Chusa(Wandang) Kim Jeong-hui,秋史(阮堂) 金正喜,Hujitsuka Chikashi,藤塚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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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지츠카 치카시 ( 藤塚鄰 ) 와 아들 후지츠카 아키나오 ( 藤塚明直 ). 사진제공 = 과천시 추사박물관 (Chusa Museum). “ 청 · 조선의 거대한 문화 교류를 일본의 학자가 천명 ( 闡明 ) 해 낸 것은 하늘의 오묘한 조화입니다 . 1) ”   후지츠카 치카시 (Hujitsuka Chikashi, 藤塚鄰 ,1879~1948, 이하 후지즈카 ) 는 동경제대 중국철학과를 졸업했고 중국청조학계와 추사 김정희 (Kim Jeong-hui, 秋史 金正喜 ,1786~1856) 의 학연을 추적하여 1936 년 ‘ 조선에서 청 문화의 이입과 김완당 ’ 이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 청조고증학 · 경서 ( 經書 ) 문헌연구에 일생 전념한 인물이다 . 후지츠카 아키나오 (Hujitsuka Akinao, 藤塚明直 ,1912~2006) 는 부친이 경성제대 교수로 재직할 때 한국에 와 5 년간 머물렀고 도쿄대학 중국철학과 졸업했다 . 1942 년 ‘ 황청경해 ( 皇淸經解 ) 의 편찬과 그 영향에 관한 연구 ’ 논문을 발표했고 2006 년 부친 후지츠카가 수집한 자료를 과천시에 기증했다 .   ( 위 ) 후지츠카 치카시 원고지 ( 藤塚鄰 原稿紙 , 20 세기 ) ( 아래 ) 이한복 간찰 2( 李漢福 簡札 2) 1941 년경 , 시전지에 먹 . 사진 = 권동철 . ◇ 박제가 , 청나라 유학자들과 인연 청조 ( 淸朝 ) 건륭제 ( 乾隆帝 ,1736~1796) 시기는 석학대유 ( 碩學大儒 ) 가 북경에 운집했던 학문과 예술의 전성기였다 . 1921 년 가을 , 후지츠카는 오랜 역사를 간직한 유리창 ( 琉璃廠 ) 이라는 책방이 있는 문화거리에 묻혀 지내다 한 이름을 발견한다 .   청나라의 진전 ( 陳鱣 ) 이 쓴 간장문초 ( 簡莊文鈔 ) 를 읽으면서 정유고략서 ( 貞蕤藁略敍 ) 라는 글에서 조선국사신 ‘ 박수기 ( 朴修其 ) 검서 ( 檢書 ) ’ 라는 이름을 보게 된 것이다 , 그는 뒤이어 예해주진 ( 藝海珠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