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자 작가‥마음의 결 따라 터치 자유분방한 감정의 궤적
Meditation(명상), 193.9×112.1㎝ acrylic on canvas, 2009
서양화가 서경자 ‘명상’연작…풍부함·희망 충만한 평화로움
아주 오래 달인 마음의 결이 이럴까. 침묵이 이렇게 아름답다. 고요한 잔물결 위. 야윈 가지에 이른 봄 초록의 조그마한 흔적, 애증의 파고가 일렁일 때마다 여미고 또 여며 속으로 녹여 내린 작거나 혹여 커다란 파문이 원(圓)으로 일다 이내 잡힐 듯 사라졌다.
나무, 물, 하늘, 별…. 생멸(生滅)을 거듭하는 자연은 인식할 수 없었던 것들을 드러내 놀라운 생명력을 실감하게 한다. 추상과 구상 사이에서 잔잔히 흔들거리는 화면은 우리들의 적절하고도 친밀한 질문에 부드러운 햇살 아래 하얗게 튕겨 빛나는 화이트 사파이어처럼
깨끗하면서도 풍요로운 선율들로 흐른다. 고요의 바다, 생(生)의 항해를 떠올리는 그녀의 매우 능숙한 문체는 우리의 정신적 체험을 때로는 격렬하고 자유분방한 감정의 궤적으로 안내한다.
“눈처럼 새하얗게 두드러진 꽃잎, 아련하게 보이는 나뭇잎과 잔가지들, 퍼져나가는 원 속에서 보이는 파편들은 화면 밖 세상으로 나가 푸른 이상향을 발현(發顯)하기를 기원한다.”(작가노트) 곧 우리가 지각(知覺)할 수 있는 암시적인 ‘명상(meditation)’의 세계이다.
Meditation. 130×130㎝, 2008
◇정갈하고 차분한 진솔한 마음
검정색과 흰색, 밝음과 어두움의 대조를 생성하면서 붓 터치들을 이어나간다. 문지르고, 긁으며 썰어내어 먹색 계통의 바탕에 노랑과 녹색의 채도 높은 색이 덧붙여짐으로써 어느새 한층 효과적 조형미를 자아낸다.
화면을 부유하는 물무늬, 바람무늬는 바탕의 정교한 처리 없이는 생각하기 어렵다. “공간을 운용하는 방식이 수다스럽거나 과장되기보다 정갈하고 차분하다.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진솔하게 이끌어낸 탓이리라.”(서성록, 미술평론가)
의도적이지 않은 여유로움, 분수에 맞는 평화로움과 시원함, 환희에 찬 즐거움,
과장되지 않고 정화된 느낌, 가슴에 맺힌 잡념과 우울함 등을
깨끗이 씻어 버릴 수 있는 맑고 투명한 느낌은 수 없이 반복되는 산고의 결실이다. 작가의 애송시 “보이지 않는 곳에 깊이 뿌리박고 있기에 항시 亭亭할 수 있는 나무”처럼.(유치환 시, 나무)
The blue, 193.9×112.1㎝, 2011
◇유유자적의 찬란한 희망 메시지
한적한 호수에 온화한 햇살이 평화로운 정경을 펼쳐놓았다. 궁극적으로 실체와 긴밀히 조응할 때만이 가능한 질서정연함. 결핍은 충만으로, 단절이 연속화되는 생생한 에너지는 단순히 물질적 차원으로만 살아 갈 수 없는 이유를 선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작가의 창조적인 일상으로부터 나오는 영감을 시학(詩學)속으로 승화시킨 화면은 우리를 비물질적 영역이나 자연의 개념적인 근원으로 인도한다. 또한 이 요소들은 끊임없는 외형적 변환을 통하여 사고와 감성의 상호 관계를 만들어 간다.
무엇인가를 나타내기보다 쥐고 있는 것을 놓아주려는 기색이 역력한 그림은 평화스럽다. 풍부함과 희망으로 충만해 있는 그녀의 작업 앞에서 까닭 모를 여유와 유유자적(悠悠自適)을 자꾸 만지작거리는 것도 마음 속 찬란 때문일까.
“겨우내 아무 일 없던 화분에서 잎이 나니 찬란하다/ 흙이 감정을 참지 못하니 찬란하다.”(이병률 시, 찬란) 꼬깃꼬깃한 종이면 어떠랴. ‘명상’을 통해 오래된 기억, 기도의 제목을 써내려갈 수 있다면 아마도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글=문화전문기자 권동철, 이코노믹리뷰 2011년 2월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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