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동철의 한국현대미술脈-理氣와 추사 김정희:작가篇] 조각가 박석원④‥돌의 미궁 본형의 사유와 통찰[朴石元, Park Suk Won,진해출신조각가,돌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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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조각가 박석원. 사진=권동철 2026.9. |
“우리는 언제나 한없이 크고도 깊은 신비의 한복판에 머물고 있으며, 그 안에서 늘 혼미한 상태에 빠져 있다. 1)”
경남 진해 출신의 조각가 박석원(朴石元, Park Suk Won, 1942~)의 고향엔 장복산(長福山)이 유명하다. 소년은 그곳 계곡의 거대한 돌덩어리와 곱게곱게 흘러내리는 맑은 물의 흐름에서 돌의 위대함과 틈새 공간이 함께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추상적 심상을 키워 나갔다.
“어린 시절 돌로 만든 놀이 기구를 던지고, 넘어뜨리고, 세우고 하면서 해 질 녘까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린 마음에도 문득문득 돌이 상당히 강하고 끈기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특히 사찰 주변계곡 큰 돌의 흔들림 없는 표정에 어떤 믿음이 싹텄다. 그래서 항상 돌 옆에서 놀고 안식처처럼 드러누워 숲과 새소리와 하늘을 바라보는 것을 즐겼다. 그렇게 자유롭게 뛰어놀고 생각하고 친구끼리 대화하는 그 시절이 나의 머릿속에 박혀 있다. 2)”
유년의 작가에게 돌은 편안함과 안정감, 날것의 촉각적 아우라, 공간적 형색 등이 각인된 자신만의 세계가 발아된 발원지(發源地)가 된다. 이렇듯 돌과 스스로를 동일화 시키는 상호적 투영(reflect)은 훗날 조각가로서 돌에 대한 해석의 지평을 확장하는 동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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積意(적의), 화강석 600×800×100㎝, 1994~1995. 사진제공=박석원. |
◇돌이 품은 힘 작위와 수행의 심층
박석원 작가의 돌 작업은 1970년대부터 시작하여 적(積), 적의(積意) 명제로 현재까지 천착해 오고 있는 연작이다. 한국의 산하에서 생산되는 마천석 등의 화강암과 현무암으로 절단과 환원, 재조립 재구축이라는 형태미의 “그 원형은 다름 아닌 우리의 토양, 우리가 살아가는 땅의 색과 질감, 시간의 숨결에서 비롯된다. 3)”
따라서 그에게서 ‘돌’은 단순히 재료에만 머무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추구해 가는 실체적 대상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돌은 미궁(迷宮)이다. 잘 알 수 없는 물질이다. 그 내면의 세계가 무엇일까 궁금증이 있다. 내가 그 속에 빨려 들어가는 것인데 뚝뚝 잘라서 층층이 쌓기도, 모으기도 하는 작업 속에서 나는 한도 끝도 없는 많은 시간을 투여해 왔다. 4)”
이러한 ‘돌은 무엇을 품고 있는가’에 대해 질문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 어떤 원리와 닿는데, 송대(宋代) 휘종(徽宗,1082~1135)은 자신이 그린 상룡석도(祥龍石圖)에 “감정을 담아 ‘풀고 맺는 공이 깊어 다하기 쉽지 않다.(融結功深未易窮)’라고 제시 마지막 구절을 썼다.
이른바 ‘융결(融結)’은 융합하고 응집한다는 뜻으로, 산천이 형성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돌은 물론 산의 일부분이다. ‘융결공심(融結功深)’은 산천과 기석이 형성하는 과정을 반영한 우주의 심오한 이치를 말한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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積(적), 화강석 60×60×60㎝, 1980. 사진제공=박석원. |
◇돌의 영속성 흔적의 해독과 전환
그렇다면 미궁 같은 돌을 어떻게 독해할 것인가. “돌 형상을 보면 나의 내면에 숨겨져 있던 모티브가 요동치고 돌과 함께 할 합치를 보는 것이다. 그때부터 작업에 들어가는 6)”는 말속에 잘 드러난다.
이는 금석학(金石學) 고증(考證)에 혼신을 쏟아부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법은 사람마다 전수받을 수 있지만 정신과 흥회(興會)는 사람마다 스스로 이룩하는 것 7)”이라며 서법과 자체(字體)를 체현(體現) 했던 자세와 상통한다.
보충하면 추사가 고비(古碑)의 흔적을 추적하고 판독(判讀) 하여 역사의 기록으로 승화시켰던 것처럼 박석원 작가 역시 돌에 남겨진 만고풍상(萬古風霜)을 겪은 세월의 비의(秘意)를 작업의 원동력으로 가져간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나의 심성적 미의식이 발현되면 그때부터는 돌이 아니다. 오로지 나의 정신이나 감성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돌이 갖는 견고함, 돌 속에 숨겨져 있는 내면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확인하면서 나와 연결하는 것은 굉장한 기쁨이다. 8)”
이리하여 돌에서 전사(前史)를 읽어내는 것은 축적된 시간성의 현재화로 지속(Durée)의 특성으로 표상된다. 생기(生氣)를 품은 존재로의 전환이라는 그 맥(脈)이 한국 현대조각에서 변주되고 있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내부에서는 여러 의식사상의 상호침투나 조직화의 과정이 속행되면서 진정한 지속을 이룬다.(...)이리하여 지속은 동질적 환경이라는 환상적 형태를 취하게 되고, 그 두 개의 항, 즉 시간과 공간이라는 항을 결합시키는 매개체는 동시성이 되는데, 이것을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의 교차점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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積意, 마천석 220×40×35㎝, 1997. 사진제공=박석원. |
◇몸과 돌의 사회학 그 환원의 역학
“몸은 돌을 치환(置換) 할 수 있는 구조적 체계의 중심 주체이다. 해체하고 환원시키는 요소들은 돌 스스로가 할 수 없는 것으로 작가의 미학관(美學觀)에 따라 엮어지는 방법론이다. 작가와 돌이 마주 섰을 때의 행위 그것은 오로지 나만이 할 수 있는 하나의 행동규범이다. 10)”
이 과정은 작가의 생각이나 의식 없이는 하나도 이뤄질 수 없는, 작가의 의식구조가 돌 속에 용해되는 부분임을 역설하고 있다. “사물의 깊이와 밀도는 살로 이루어진 존재의 차원이다. 보이는 세계도 자신의 깊이와 밀도를 가지고 있고, 그 깊이와 밀도는 세계의 살의 차원에 속한다. 보는 자의 몸의 깊이도 살이다. 11)”
따라서 해체와 환원의 구조가 발생되는 지점에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작가의 신체성, 바로 몸인 것이다. 물질의 성질을 어떻게 덜어내고 압축할 것인지 그러한 질량과 균형, 공간의 역학적 관계성을 사유하는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수행성이 한국 성리학의 정수인 예(禮)까지 구축되는 이른바 ‘돌의 사회학’으로 확장시키는 매개체인 것이다.
“특별히 돌에서 주고받는 대화나 감성은 그 생명력이 깊고 무궁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돌은 몇 천년을 가기 때문에 따라갈 수가 없다. 그것을 응용해서 나의 작위를 한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것인가. 그래서 의존할 수밖에 없다. 돌은 견고함에서 오는 에너지를 전달해 준다. 반항이랄까 그런 것 없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묵묵하고 묵직한 돌의 속성이 항상 궁금해지는 이유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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積意, 마천석 160×360×40㎝, 2004~2005. 사진제공=박석원. |
◇교감, 개체와 틈새 여백의 교차
“돌의 절단(切斷)은 작가의 작위가 개입되고 응용하는 과정이자 또한 절단이 아니고서는 작품을 볼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절단이 들어가면 개체에서 개체가 생겨난다. 이러한 분화(分化)는 나의 의도이면서 나아가 돌과의 관계를 성숙시키는 대화의 방법이기도 하다. 결국 돌과 나와의 문제로 집약된다. 13)”
여기서 박석원 작업은 분절에서 개체 간의 틈새까지 아우르는 교감의 상태가 하나의 작품세계를 형성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부연하면 연결되거나 없어지는 틈새의 빈 공간이 작가의 시선에서는 단절이 아니라, 서로 응시하고 교감하는 기운이 생성되는 장(場)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박석원 조각의 틈새는 교차(chiasme)가 일어나는 분기점으로 읽힌다.
“보이지 않는 것은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부재의 방식으로 보이는 세계에 현전하고 있으며, 보이는 세계에서 축출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에 의해서 열려지는 또 다른 차원성이다.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의 고양됨이자 깊이이다. 14)”
이렇듯 개체와 틈새는 서로를 견인해 나아가는 유무상생(有無相生)의 관계이다. 이들의 상호작용에 의한 그 여백(餘白)을 통해 비로써 전체 형식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절단, 개체, 틈새까지 아우르는 조형적 담론(談論)이 박석원 조각 철학의 관계론이다.
“보아도 보이지 않으니 미세함(微)이라 이름 붙이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니 희미함(希,稀)이라 이름 붙이고, 어루만져보아도 얻을 수 없으니 ‘없음(夷)’이라 이름 붙인다.(…)이것은 ‘모양 없는(无狀)’ 모양이고 ‘사물 없는(无物)’ 형상이니, 이를 황홀(恍惚)함이라 한다.
視之而弗見, 名之曰微. 聽之曰弗見, 名之曰希. 捪之弗得, 名之曰夷.(…)是謂狀之狀, 无物之象, 是謂忽恍. 15) ”
한편 개체와 틈새는 새로운 구조로 재구성되는 과정에서 돌에 내재된 힘을 용출(涌出) 시킨다. 작가의 행위가 개입되면서 형태가 변화되는 때 잠묵(潛默) 해 있던 어떤 맥(脈)을 신기롭게 드러낸다. 숨겨져 있던 운동성이 발현되는 그곳이 바로 틈이라는 의미다. 박석원 돌조각이 자연의 모습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계가 함께 관여하는 연대감(連帶感)이라는 점이 설득력을 얻는 배경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그 ‘격앙’은 내 마음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연의 움직임 속에 존재하고 있던 것입니다. 진실한 작품은 자연에 대해 감동합니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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積意, 화강석 300×300×50㎝, 1993. 사진제공=박석원. |
◇드러냄, 돌의 현상 일체의 정신성
하나의 작품이 되어가는 것은 드러냄의 연속이다. 이 드러내는 순간을 하나의 문제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동시에 장담할 수 없는 정의라 할 수도 없다. 박석원 작업에서 돌의 현상을 하나의 결정(決定)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함의(Implication)를 짓는 행위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작업은 위로 옆으로 또 붙이기도 하는 과정 속에서 여러 개가 합성하는 것인데 그런 위치가 작가에겐 긴장감을 가지고 바라보게 하는 요소이다. 드러내고, 모으고 하는 그런 혼합의 과정이 많을수록 더 깊이 있는 세계로 접근할 수 있고 나아가 무한히 갈 수도 있다. 17)”
세월의 결, 호흡의 궤적, 숨겨진 흔적의 상태로 구축되는 작가와 돌의 탐색과정이자 그것이 미완의 상황임을 피력하고 있다. “어쨌거나 좀 더 잘했으면 하는데 돌을 경험하고 다루는 기술이 어려워 힘들었다. 내가 깊이 있는 데까지 생각했던 것까지 가기가 쉽지 않았다.
작업상의 난점 때문에 더 만족스러운 방향으로 못 갔다는 괴리감은 늘 있다. 50~60퍼센트 완성도에 기쁨을 느끼고 대화할 수 있는 그것으로 완성의 감정을 가진다. 언제나 돌은 나로 하여금 또 다음의 세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더 올바른 세계를 찾게 해주는 메시지를 남겨 준다. 18)”
이점은 작가의 개입에서 작품의 근간이 이뤄진다는 것 또 자연은 완성된 전체가 아니라 천변만화(千變萬化)의 선상에 있다는 중의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하여 “‘다른 것’은 ‘그것’으로부터 나온다. ‘그것’도 마찬가지로 ‘다른 것’을 따른다. 彼出於是.是亦因彼. 彼是. 19)” 그러한 물아일체의 정신성이 결(texture)로 중첩된 현존화(現存化)로 우리들 곁에 우뚝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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積, 화강석 현무암 820×300×200㎝ 300×150×150㎝ 230×200×110㎝, 1987. 사진제공=박석원. |
◇돌의 모티브 현대적 감각의 물질학
“나는 파괴를 하더라도 버리지 않고 그 자리에 모두 다시 같다 놓는다. 작품 속에 작품화하는 것이다. 20)” 박석원 작가는 작품화되는 본래 돌의 속성이 그대로 보존된 파편에 내재된 어떤 여지의 가능성을 탐지하려 한다. 곧 치환 의식의 마인드이다.
작가는 이 부서진 조각들을 구분하지 않고 작품 가운데로 ‘다시 끌어들임(Re-introduction)’으로써 시간의 흐름 속에 잠재된 역동성을 깨우고, 기호의 경계 너머 탈 코드화 파편들까지 생성 순환성(Generative Cyclicality)으로 껴안아 품는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물질이 간직한 것들에 신선한 생명성을 부여하는 가치가 박석원 조각론의 깊이를 보여주는 것이자 동시에 현대성(Contemporaneity)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
“(...)변화는 사물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하고 분리되면서 발생한다. 현재는 다양한 방식의 순간적 배열이며, 역사는 연속적 위치와 관계 21)”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1817년 경주에 갔던 추사 김정희의 문무왕비 발굴은 돌 표면 잔자(殘字)의 흔적을 찾아내 세상에 출현시켰다는 점에서 박석원 작가 사유의 궤적은 이와 공명(共鳴)한다.
“비석의 하단부는 받두렁의 돌무더기 속에 묻혀 있었고, 상단부는 풀 속에 버려져 있었다. (...)땅거미가 어스름하여 답답함을 풀 수 없었는데. 형으로부터 붉은색으로 점을 찍어 교정한 ‘문무왕비’의 잔자(殘字) 석문을 받고 보니 다시 정정 해야겠습니다. 22)”
비석의 일부를 끈질기게 추적하면서 비문을 완성해나간 추사의 글은 만고풍상 속 드러나지 않은 문자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궤적을 복원하는 단서가 빗돌(碑돌)이었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크다.
돌은 강물처럼 유유히 흐르는 끊임없는 세월의 흔적이 작용하는 물성(物性) 그 자체이다. 바로 이 도저(到底)한 시간의 조류 속에서, 박석원 돌 조각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1),16)로댕의 생각,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지음, 김문수 편역, 돋을새김.
2),4),6),8),10),12),13),17),18),20)박석원 작가, 나와 돌 그 깊은 인연의 세계, 2026.
3)조형의 울림, 홍순모 지음, 나남.
5)고화신품록(古畫新品錄), 황샤오펑(黃小峰) 지음, 조성환 옮김, 아트북스
7)완당전집 제8권 잡지(雜識), 한국고전번역원 신호열 譯, 1988.
9)시간과 자유의지(Essai sur les données immédiates de la conscience), 베르그송(H. Bergson), 정석해(鄭錫海) 讀/문화와 윤리, 시바이쩌, 안인길 讀, 삼성출판사, 1982.
11),14)메를로퐁티 현상학과 예술세계, 신인섭 엮음, 한정선-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中, 그린비.
15)백서(帛書) 노자(老子), 송영배(宋榮培) 지음, 학고방(學古房).
19)장자(Chuang-Tzü), 앵거스 그레이엄(Angus Charles Graham) 지음, 제물론(齊物論) 중, 김경희 옮김, 이학사.
21)시간의 형상(The Shape of Time), 조지 쿠블러(George Kubler) 지음, 임종현·최남선 옮김, 집.
22)나는 옛것이 좋아 때론 깨진 빗돌을 찾아 다녔다-추사 김정희의 금석학, 박철상 지음, 너머북스/秋史金正喜名作展, 예술의 전당, 78~79쪽, 1992.
[글=권동철 미술전문기자·전문위원. 9월19일 2026. 인사이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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