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안준섭…체험의 붓질 감각의 리듬성[문인화, 안준섭 작가, Ahn Junseop, 安準燮, 용인출신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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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딛고, 162×130㎝ Acrylic on canvas, 2026. 사진=안준섭.
“‘연결을 증가시키는 것만을 간직하라’ 왜냐하면 긍정한다는 것은 단언하거나 추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볍게 하고, 토대를 부수고, 다른 가능성들의 신선한 공기를 풀어놓고, 어리석음과 클리셰와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1)”
화면은 완만한 원형(原型)의 덩이가 쌓인, 사이 혹은 그 아래로 흘러러내리는 형상이 어우러져 풍경을 이룬다. 햇덩이같은, 둥글거나 발돋움하듯 부풀어 오르는 이상(理想), 수행도량의 뜨락에 앉은 햇살이 나직하게 다가와 말을 건네는 듯 하다.
“현존재는 둥글다(Das Daseinistrund). 왜냐하면 둥근 듯이 보인다고 말하는 것은, 존재와 외관의 이중상태를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여기서 뜻하려고 하는 것은 제 둥굶 속에 있는 존재 전체인 것이다.(…)존재를 관조하는게 아니라 존재를 그의 직접성 가운데 사는(體驗) 것이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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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딛고, 162×130㎝ Acrylic on canvas, 2026. 사진=안준섭. |
◇寫意의 울림 축적의 운율감
소리만 들릴 뿐 좀처럼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숲 속 시냇물, 매혹의 꽃잎이 한 아름 뿌려지는 찬란한 노을을 꿈에서 본 듯 그런 미묘한 여운의 감각에 어떤 운율(韻律)이 흐른다. “생겨나는 하나의 악음은 저 혼자서 음악의 우주를3)”불러 일으키고 “하나의 시작이라는 느낌, 한 세계의 시작을 갖게4)”한다.
여기에 찰나의 호흡이 배어든 생생한 질감은 볼륨과 깊이감으로 삶을 풍성하게 만든다. “나는 자주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추사 김정희 붓질에 들어가 탐구하면서 내 그림에 적용시키기도 한다.5)” 이러한 감필(減筆)과 여백의 깊이감에서 우러나는 사의(寫意)의 마음가짐과 울림의 자국을 따라가는 태도야말로 안준섭 작가정신의 뿌리로 간주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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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딛고, 162×130㎝ Acrylic on canvas, 2026. 사진=안준섭. |
“난(蘭)을 치는 법은 또한 예서(隷書) 쓰는 법과 가까우니, 반드시 문자(文字)의 향기와 서권(書卷)의 정취가 있은 다음에야 될 수 있는 것이다.(…)난을 치는 데는 반드시 붓을 세 번 굴리는(三轉) 것을 묘로 삼는 것인데,…6)”
이를테면 한 획 붓 움직임의 힘과 방향, 몰입과 이완, 속도의 완급은 삼전지묘(三轉之妙) 경지와 고결한 풍취가 깊은 어울림으로 생성됨을 부각(浮刻) 시킨다.
안준섭 ‘풍경을 딛고’ 시리즈 역시, 저마다 고유한 요소들이 서로에 영향을 주며 축적된 반복구성의 운율감을 이룬다는 점에서 추사의 삼전(三轉)과 만난다. “여러 상황을 한 화면에 담으려고 한다. 다소 복잡하고 어눌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느슨하지만 진심을 얘기하는 본질적인 것을 드러내는 태도의 일환이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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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딛고, 162×130㎝ Acrylic on canvas, 2026. 사진=안준섭. |
◇21세기 문인화와 내면풍경
“나의 작품은 풍경 이를테면 산과 강, 내면의 풍경들과 문인화(文人畵)의 묵향(墨香)을 품은 어떤 태도들을 보듬어 안으려 한다. 구체적 대상이 아니라 조선시대 선비가 갖고 있는 기개, 운치, 세상에 대한 소회 나아가 개인적인 표명일 수도 있겠다.8)”
생성과 소멸 그 시간의 역사가 집적된 다채로운 감정의 결 들을 보여주는 화면은 여러 삶을 겪으면서 얻은 작가의 체험적인 발현과 다름 아니다. 덧붙이면 자연합일(自然合一)사유와 호흡의 리듬감이 융화되는 내면풍경(內面風景)인 것이다.
이것은 21세기를 관통하는 한국적 문인화의 맥박이라는 안준섭 회화의 정신성이자 동시에 한국현대미술에서 문인화를 독창적으로 재해석해 내는 반열에 들어 선 강력한 근거가 되고 있다.
[참고문헌]
1)들뢰즈-연결의 철학(The Deleuze Connections), 존 라이크먼(John Rajchman) 지음, 김재인 옮김, 그린비.
2)공간의 시학(La Poétique de l'Espace),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지음, 곽광수 옮김, 동문선.
3),4)발레리 선집, 폴 발레리(Paul Valery)지음, 박은수 옮김, 을유문화사.
5),7),8)안준섭 작가, 나의 작업과 문인화, 2026.
6)완당전집 제2권 서독(書牘), 우아에게 주다(與佑兒), 한국고전번역원 임정기 譯, 1995.
[글=권동철 미술전문기자·전문위원. 9월4일 2026 인사이트코리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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