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최인수‥신체와 물질성 공감과 생명의 존재론[최인수 미술가,최인수 작가,Sculptor Choi Insu,崔仁壽]

 

장소가 되다-12(Becoming a Place-12), 164×15.5×10.5Zelkova, 2025. 사진=소농지, 앰앤송아트/송아트갤러리 윤형근-최인수, 2026.


지나가는 격자 때문에 지쳐버린 표범의 눈은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더없이 작은 원을 그리며 돌고있는 유연하고 늠름한 발로 자늑자늑하게 걷는 걸음새는 하나의 커다란 의지가 마비되어 서 있는 하나의 중심을 둘러싼 힘의 무용같다. 다만 때때로 눈동자의 장막이 소리 없이 열리면 그때 하나의 형상이 들어가서 사지의 긴장된 정적 속을 지나 심장에서 문득 사라진다.1)

장면(scene)은 나무, , 철판 작품이 서 있거나 누워져 있는 상태로 놓여져 있다. 단 하나만을 시현(示顯)함으로써 부각되는 존재성은 하나의 의미에 대한 상호작용, ·공간으로 마음의 지평이 넓어져 오랜시간 침묵으로 응시하게 한다. 하여 비유(比喩)가 의미없는 오직 하나를 향하는 이 심도(深到)의 화두는 무엇인가. 

공간은 주관 속에 있지 않으며 세계가 공간 안에 있는 것도 아니다. 공간은 오히려 세계 안에 있다. 즉 현존재를 구성하는 세계ㅡ내ㅡ존재의 공간을 열어 보인 이상, 공간은 세계 안에있다.2)”

 

장소가 되다-13(Becoming a Place-13), 162×15.3×10.2Zelkova, 2025. 사진=소농지, 앰앤송아트/송아트갤러리 윤형근-최인수, 2026.


죽은 나무 균열(crack)은 왕성한 운동 때의 응력(凝力)이 소멸된 자리에 자연이 전승한 흔적이다. 햇빛과 바람, 눈과 비바람에 갈라지고 휘어진 날카로움이 파고든 자국까지도 작가는 고스란히 맞아들인다. 

어릴적 비가오면 마당이 땅땅해지는데 그런 흙에 무엇을 그리며 놀이를 했었다. 나이가 들어서 생각해 보니, 내가 주도적으로 흙을 다룬 것이 아닌 재료가 주인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물질이 드러내고 싶어하는 상태를 보조자로써 따를 뿐 미리 고려해서 깎거나 만들지 않는다.3)”

 

조각가의 은신처(Sculptor’s Refuge), Bronze 18×47×22.5Bronze, 2005. 사진=소농지, 앰앤송아트/송아트갤러리 윤형근-최인수, 2026.


재료의 성질 그대로를 드러내주는 조형

최인수 작가 작품에서 주목할 부분은 손가락으로 움푹 판자리이다. “재료에게 온갖 아양을 다 떤다.4)”라고 본인은 말했지만, 재료와 신체 둘 만이 교감하는 관용(Tolérance)이 배어있다. 

손가락으로 눌렀을 때, 밀도와 재료만의 성깔을 단 한번의 동작만으로도 읽게 될 것이다. 그 찰나의 감정 이를테면 타이르듯, 순치(馴致)하는, 주저함 등이 손 끝 민감성에 실려 자국으로 남은 은유가 바로 그 아양인 것이다. 

이러한 의식은 옹이나 풀처럼 드러누운 나무의 성질 그대로를 작업에 반영하게 한다. 또 흙을 굴리며 형태를 만드는 행위에도 온 체중이 실린 손의 압력, 호흡 등의 감각이 물질성에 축적된다.

 

먼 곳으로부터 오는 소리(At the Edge of Sound), 39×397×41Cast iron, 1993. 사진=소농지, 앰앤송아트/송아트갤러리 윤형근-최인수, 2026.


그리하여 흙이 변한 것이 아니라 가치가 획득된 치환(置換)으로서의 흙이 된 것이다. “굴려서 만든 흙 작품처럼 그래서 내가 물성이 된다. ‘조각은 앞에서 보면 끝나는가, 뒤는 보지않아도 되는가?’라는 스스로의 질문, 그런 것이 한계처럼 느껴져 연속성(Sequence)을 적용해 통섭(統攝)의 가능성을 구현해 보고자하는 방법론이다.5)” 

이점은 신체와 물질의 동일시(Empathy), “시작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가능성이 많지만, 숙련된 사람의 마음에는 가능성이 아주 조금밖에 없습니다.6)”라는 집착하지 않는 초심과의 깊은 조화로움을 품는다. 

그리하여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 먼 곳으로부터 울려오는 종(), 내 몸이 다시깨어나는 그런 소리의 울림을 함축하는 단서가 되고 있다. 이것이 조각가 최인수 작업을 관통하는 근원에 대한 물음의 핵심과 다름 아니다.

 

[참고문헌]

1)릴케 후기 시집, R.M 릴케 지음, 표범중에서, 송영택 옮김, 문예출판사.

2)존재와 시간(Sein und Zeit),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지음, 전양범 옮김, 동서문화사.

3),4),5)최인수 작가, 내 작업의 존재론과 수행성, 2026.

6)선심초심(禪心初心), 스즈키 순류(鈴木俊降), 정창영 옮김, 김영사.

 

[=권동철 미술전문기자·전문위원. 862026. 인사이트코리아 8월호]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주간한국]서양화가 류영신‥우주가 빚은 무한시간의 파노라마[RYU YOUNG SIN,류영신 작가]

서양화가 서경자…나뭇잎 배 저 창공의 꽃봉오리

서경자 작가‥마음의 결 따라 터치 자유분방한 감정의 궤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