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동철의 한국현대미술脈-理氣와 추사 김정희:작가篇] 조각가 박석원③‥자연의 내재율 ‘쌓음’의 수행과 시공간의 생성[Park Suk Won,박석원 작가, 박석원 미술가]
![]() |
적(積)8567, 250×45×45㎝ 나무, 1984. 사진=박석원.
“천지는 나와 함께 태어났고, 만물은 나와 하나다. 이미 하나가 되었으니 말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미 하나라고 했으니 말이 없을 수 있겠는가? 天地與我竝生, 而萬物與我爲一. 既已為一矣, 且得有言乎. 既已謂之一矣, 且得無言乎.1)”
조각가 박석원에게 나무는 1960~70년대 집중적 작업을 거쳐 현재도 지속해 오고 있는 적(積), 적의(積意)시리즈 매재이다. 70년대 석재와 연결되면서 주춤했지만 후반기 다시 이 작업을 이어갔다.
![]() |
적의(積意)9317, 250×250×35㎝ 침목 석고 철, 1992. 사진=박석원.
◇나무, 동화와 존중 생명의 존재
박석원 작가는 나무를 작업재료 이전에 생명의 숨결을 간직한 상호관계로 인식한다. 향내, 질감, 결, 옹이 등 나무가 품은 응축된 시간의 흔적과 조우하고 동시에 새로운 동행의 시작점에 있기 때문이다.
숲의 당당한 일원으로서 살았던 찬란했던 시절의 흔적을 드러내주는 존중의 태도에 초점이 맞춰져 나무와 작가는 호흡과 감응, 반복과 침묵의 응시로 교감한다. “나무는 종류나 밀도 차이에 따라 다른 느낌을 주는 특이한 소재이다. 무엇보다 내가 찾고자 하는 세계를 충실하게 응대해주는 재질적인 힘이 있다.2)”
그리하여 단순히 나무를 깎는 것이 아니라 나무의 고유성을 발현해 주려는 고원한 심상(心象)이 함께한다. 하여 자연의 순리를 설파한 저 유명한 포정해우(庖丁解牛)의 글이 떠오른다. “지금 저는 신기(神氣)로써 소를 대할 뿐 눈으로 보지 않습니다. 감각과 지각이 멈추면 신기의 작용이 시작 됩니다. 살 속에 나 있는 자연의 결(天理)(…)본디부터 나 있는 길을 따라 갑니다.(方今之時, 臣以神遇, 而不以目視,官知止而神欲行. 依乎天理,(…)因其固然.)3)”
![]() |
적(積)-응력(應力), 240×50×30㎝(each), 1973. 사진=박석원.
◇절단, 조형의식과 내부의 드러남
절단은 도구를 활용한 감산(減算) 단계를 거친다. “나무 덩어리를 갖다놓고 큰 톱으로 절단하고 정으로 조깨거나 표면을 다듬고 재구축하는 작위(作爲)로 발전4)”한다. 이때 부드러운 물성에 숨결이 통하는 조형의식이 개입되어 나무의 내부를 가시화(可視化) 시킨다.
이 과정 이후 물질과 공간의 영역으로 귀결되는 ‘쌓는다’는 형식으로 체현되는데 박석원 조각의 본질을 지향하는 환원(Reduction)과 깊게 연동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것은 “허(虛)로써의 공간을 상정하고나서 성립하고 다시 하나의 면의 어긋남에 의해 매스 자체가 자립한 공간성을 획득할 수 있다. 그것은 안쪽에서 두드려서 만든 실의 공간이며 거꾸로 열린 공간에 대한 도전일지도 모른다.5)”
![]() |
적의(積意)9175, 60×250×15㎝ 나무 석고, 1991. 사진=박석원. |
◇환원과 음양 수행적 질서의 전환
여기서 환원(還元)은 ‘올리는 구조물’에서 발생하는 철학적 사유의 심화와 맞물린다. 마치 음양의 순환처럼 생성과 소멸의 근원성과 연관된다. “나무와는 호흡이 잘 맞는다. 살아 있는 듯한 촉감적 감각이 작용하고 그래서 마음 편하게 목재를 끌어당기고 대화를 하듯이 다듬어 나가며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전개해 나갔다.6)”
이 흐름에서 나무는 형상을 보이고 작가는 깊은 영혼의 수행(修行)으로 향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탄생한 조각작품은 신선한 의미와 형태의 생명성을 획득한 그런 존재로 거듭 태어나는 것이다.
“역은 천지의 변화를 질서있게 포섭하면서도 허물을 범치 아니하고, 만물을 곡진하게 성취시켜주면서도 빠트림이 없다. 낮과 밤이라는 우주의 길에 통달하면서도 바른 앎을 유지 한다. 範圍天地之化而不過, 曲成萬物而不遺, 通乎晝夜之道而知,(…).8)”
![]() |
박석원-김세중미술관 기획초대전 장면. 사진=권동철, 2022. |
◇변화와 진실 열림과 독창적 시현
“나무는 작가의 손길이 가면 스스로 몸부림 치면서 변해가는 특성이 있다. 가장 자연스러운 재질이랄까. 그런 솔직하고 담담한 성질로 나는 나무를 얘기하고 싶다.9)” 나무는 수축과 팽창을 하고 틈이 생기고 세월 속에서 산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도움이나 개입없이, 분류되지도 않고 소속되지도 않지만 스스로 작동10)”하는 물질의 자율성(material agency)을 내보인다. 이 맥락에서 박석원 작가와 나무가 공명하는 생동성, 이를테면 “(…)떼놓을 수도 없고 뒤섞을 수도 없다. 그것을 불상리(不相離)-불상잡(不相雜)11)”의 질서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나무의 ‘쌓음’은, 친밀한 열림의 관계성으로 그것이 어떻게 생성(Becoming) 되는지에 대한 몸의 이행 이른바 체찰(體察)을 공유한다. 그럼으로 이 행위는 작업의 끝 단계가 아니라, “작품속에서 진실의 벌어짐이 작동12)”하는 수행의 장(場)으로써 긴 여운을 품는다. 이러한 환원의 현전(現前)이 조각가 박석원의 유일무이한 나무 작품세계 바로 독창성인 것이다.
“그러나 단 한번이라도, 오직 한 번이라도; 한 때 지상에 있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 아닌가.(…)그에게 한 물체가 얼마나 행복하고, 무구(無垢)하고 또 우리 것일 수 있는지 보여 주어라. 심지어 비탄하는 슬픔까지도 어떻게 자기 자신의 결정체가 되는지, 하나의 사물로 봉사하는지, 또는 어떤 사물 속으로 함몰하는지ㅡㅡ,13)”
[참고문헌]
1)장자, 장주(莊周) 지음, 제물론(齊物論) 중, 김갑수 옮김, 글항아리.
2),4),6),9)박석원(Park Suk Won)작가, 나무의 성질 나무의 몸짓, 2026.
3)장자, 장주(莊周) 지음, 양생주(養生主) 中, 김갑수 옮김, 글항아리.
5)이일 미술평론가, 박석원의 절단(切斷), 1980.
7)조응(Correspondences), 팀 잉골드(Tim Ingold) 지음, 김현우 옮김, 가망서사.
8)도올 주역 계사전, 도올 김용옥 지음, 통나무.
10)해체,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지음, 김보현 옮김, 문예출판사.
11)퇴계 이황의 함양과 체찰, 신창호 엮고 지음, 미다스북스.
12)미술작품의 샘(Der Ursprung des Kunstwerkes),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지음, 한충수 옮김, 이학사.
13)두이노의 비가/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지음, 제9의 비가(悲歌) 중, 염승섭 옮김, 부북스.
[글=권동철 미술전문기자·전문위원. 8월3일 2026. 인사이트코리아]

9317,%20250%C3%97250%C3%9735%E3%8E%9D%20%EC%B9%A8%EB%AA%A9%20%EC%84%9D%EA%B3%A0%20%EC%B2%A0,%201992.%20%EC%82%AC%EC%A7%84%EC%A0%9C%EA%B3%B5=%EB%B0%95%EC%84%9D%EC%9B%90..jpg)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