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색화가 신기옥‥진리의 기품 곧은 이치의 인간학[서양화가 신기옥,신기옥 화백,신기옥 작가, Dansaekhwa painter Shin Ki Ock]

 

                                                  Line Rhythm-35, 180×110Acrylic on canvas, 2023.


필연의 법칙은 과거가 그것을 단순히 다른 형태로 반복하는 현재 속에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뒤따르기를 바라고, 모든 것이 언제나 흘러가기를 바란다. 순수 지각으로부터 기억으로 이행하면서 우리는 정신을 향해 결정적으로 물질을 떠났다.1)

 

Line Rhythm-84, 73×73, 2023.


봄비가 유장한 멜로디처럼 대지에 스며든다. 강가저편 도화(桃花)에 매달린 물방울이 춘파(春播)가 대지를 막 뚫고 나오는 찰나에 떨어진다. 어느 골짝 습윤한 기운이 맴도는 억겁풍상 고비(古碑)엔 서릿발 같은 문기(文氣)의 정신이 세월의 허무한 자국을 껴안은 흔적을 드러내고 있었다. 

숲은 돌아가는 길에 자리해 빽빽하고, 물은 뭇 산을 뚫고 멀리 흐르네. 꽃이 핀 나무들엔 향기로운 바람 그득하고, 달빛 받은 긴 내는 명주처럼 고은 색으로 환하네. 林當歸路密 水貫衆山遙. 開花萬木香風滿 受月長川練色明.2)

 

Line Rhythm-69, 117×91Acrylic on canvas, 2023.


기운생동의 풍토성 군집미학의 사의

한 시절 찬연한 꿈속의 희로애락이 덧없는 갈필(渴筆)의 솔가지에 둥근달을 띄운다. 저 무한시공의 빛발 속 외경을 품은 발길이 묵묵히 길을 내고 있다. 요철을 낸 표면에 바탕색을 깔고 다시 그 위에 고도의 난이도를 요하는 상하연속반복의 역동공간이 집적된다. 

켜켜이 몰입의 필치가 찾아가는 수행의 세계는 무엇인가. 시문의 운율 한 획()이 뜨겁게 껴안은 생성과 소멸의 삼라만상이 한 줄기 바람을 타고 산봉우리를 넘어간다.

 

Line Rhythm-71, 117×91, 2023.


6.25전쟁과 4.19혁명이라는 혼돈과 변혁의 시대를 관통했던 1960년대 한국현대미술운동의 화두, 가장 한국적인 정체성의 불꽃이 여기 명징한 통찰로 초연히 서 있다. 당시 그 일원으로써 예술과 실존에 대한 고뇌의 붓질을 했던 청년의 사유(思惟)60여년이 흐른 후 단색화 ‘Line Rhythm’에서 오버랩 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어머니가 베틀에서 명주실을 짤 때 형성되던 선()이 드러내는 찬찬한 한국미의 결.3)그곳엔 온정의 심도를 배가키기는 한반도 풍토성(風土性)이 깊숙하게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힘의 몽상의 법칙 그 자체, 즉 손바닥 속의 작은 양으로, 우주적 지배의 수단을 지니는 것이다. 또한 구체적인 형태로서는, 열쇠가 되는 말이나 조그만 말이 아주 깊숙이 숨겨진 비밀도 드러나게 할 수 있다는 이상(理想)이기도 하다.4) 

하여 일상에 안주하는 관성(慣性)을 일깨워 조선후기 전인적문인화의 우아미가 배어있는 정신성으로 발현되는 이것이 신기옥 단색화의 사의론(寫意論)이다. 동시에 와 우주공간의 영원성에 대한 인연법의 함축미로 표출되는 운치의 인간학이 되는 것이다.

 

[참고문헌]

1)물질과 기억(Matière et mémoire), 앙리 베르그손(Henri Bergson), 박종원 옮김, 아카넷.

2)표암유고(豹菴遺稿), 약명시(藥名詩), 강세황 지음, 김종진 변영섭 정은진 조송식 옮김, 지식산업사.

3)신기옥 작가, 나의 단색화 ‘Line Rhythm’, 2023.

4)물과 꿈-물질적 상상력에 관한 시론,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지음, 이가림 옮김, 문예출판사.

 

[=권동철, 3월호 2024, 인사이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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