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츠카와 난학(藤塚と蘭學)]추사 김정희와 후지츠카 치카시, 민족과 시대를 초월한 숭고한 만남[Chusa(Wandang) Kim Jeong-hui,秋史(阮堂) 金正喜,Hujitsuka Chikashi,藤塚鄰]
후지츠카 치카시(藤塚鄰)와 아들 후지츠카 아키나오(藤塚明直). 사진제공=과천시 추사박물관(Chusa Museum).
“청·조선의 거대한 문화 교류를 일본의 학자가 천명(闡明)해 낸 것은 하늘의 오묘한 조화입니다.1)”
후지츠카 치카시(Hujitsuka Chikashi,藤塚鄰,1879~1948,이하 후지즈카)는 동경제대 중국철학과를 졸업했고 중국청조학계와 추사 김정희(Kim Jeong-hui,秋史 金正喜,1786~1856)의 학연을 추적하여 1936년 ‘조선에서 청 문화의 이입과 김완당’이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청조고증학·경서(經書)문헌연구에 일생 전념한 인물이다.
후지츠카 아키나오(Hujitsuka Akinao,藤塚明直,1912~2006)는 부친이 경성제대 교수로 재직할 때 한국에 와 5년간 머물렀고 도쿄대학 중국철학과 졸업했다. 1942년 ‘황청경해(皇淸經解)의 편찬과 그 영향에 관한 연구’논문을 발표했고 2006년 부친 후지츠카가 수집한 자료를 과천시에 기증했다.
(위)후지츠카 치카시 원고지(藤塚鄰 原稿紙, 20세기) (아래)이한복 간찰2(李漢福 簡札2) 1941년경, 시전지에 먹. 사진=권동철.
◇박제가, 청나라 유학자들과 인연
청조(淸朝) 건륭제(乾隆帝,1736~1796)시기는 석학대유(碩學大儒)가 북경에 운집했던 학문과 예술의 전성기였다. 1921년 가을, 후지츠카는 오랜 역사를 간직한 유리창(琉璃廠)이라는 책방이 있는 문화거리에 묻혀 지내다 한 이름을 발견한다.
청나라의 진전(陳鱣)이 쓴 간장문초(簡莊文鈔)를 읽으면서 정유고략서(貞蕤藁略敍)라는 글에서 조선국사신 ‘박수기(朴修其) 검서(檢書)’라는 이름을 보게 된 것이다, 그는 뒤이어 예해주진(藝海珠塵)에 수록된 정유고략을 보고 박수기 이름이 제가(齊家)인 것을 알게 된다.
시간이 흘러 1926년 경성제국대학에 후지츠카는 발령받고 어느 날 인사동을 지나다 백두용(白斗鏞,1872~1935)이 문을 연 고서적점 한남서림(翰南書林)에 들리게 된다. 그곳에서 ‘사가시(四家詩)’라는 책을 집어 들다 책머리에서 박제가라는 이름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그때의 감정을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새겨져 있던 이름 하나가 갑자기 확하고 다시 살아났던 것이다. 이어서 조사해보니 그는 이덕무(李德懋), 유득공(柳得恭), 이서구(李書九)와 나란히 사가(四家)로 칭송되던 신진학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더욱이 그 책에는 청나라 이조원(李調元), 반정균(潘庭筠)이라는 유명한 두 학자의 서문이 들어 있었고 비평도 함께 실려 있었다.
나는 비로소 박제가가 비범한 영재임을
깨닫게 되었고 동시에 조선 사람과 청나라 유학자들 사이의 학문적 인연이 보통이 아님을 알게 되면서 특별한 흥미를 느꼈다. 그리고 우선 박제가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2)”
(왼쪽)청조문화 동전의 연구-가경·도광 학계와 조선의 김완당, 淸朝文化東傳の研究-嘉慶·道光學壇と李朝の金阮堂),후지츠카 치카시 지음,후지츠카 아키나오 엮음,1975. (오른쪽)김완당의 입연 강연원고와 완당과 청조문화 원고. 사진=권동철.
◇추사, 19세기 초 동아시아문화교류 제1인자
박제가(朴齊家,1750~1805)는 조선후기 실학자이자 외교관으로 북학파의 핵심인물이다. 후지츠카는 그가 네 차례 청나라 사행(使行)을 통해 중국지식인들과 교유하고 청조경학의 수많은 서적들을 가지고 돌아온 것을 알게 된다. 이 과정에서 박제가의 제자로 영특한 인물 완당 김정희(阮堂 金正喜)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완당’은 추사 김정희의 호(號)이다.
후지츠카는 추사가 단 한 번 북경에 들어가 청나라 최고서예가이자 금석학자인 담계 옹방강(覃谿 翁方綱,1733~1818), 운대 완원(芸臺 阮元,1764~1849) 두 경사(經師)의 인정을 받고 여러 명사들과 왕래하며 청조학문의 핵심을 손에 넣고 귀국, 조선학계에 실사구시(實事求是)라는 새 국면을 연 인물이었다는 점을 주목하게 된다.
다음은 아들 아키나오가 남긴 글이다. “아버지는 일·청·조선의 문화교류와 청조경학이 동전(東傳)한 양상에 착안하여 깊이 연구하였고, 황청경해(皇淸經解) 편찬자인 완원(阮元)과 조선의 학인(學人) 김정희(金正喜)와의 사이에 특수한 관계를 발견했습니다. 완원은 황청경해를 간행하자마자 바로 김정희에게 기증했습니다. 산더미 같은 묶음의 경해 1,200권이 김씨의 수중에 들어온 것은 1832년(道光12) 봄이었습니다.3)”
한편 후지츠카의 저서 행간엔 김정희를 단지 추사체창안자가 아니라 19세기 전반 동아시아 문화교류의 핵심인물이라는 관점을 줄곧 유지하고 있다. “특히 청조학(淸朝學)의 대완성자 중 한 사람인 김 완당을 중심으로 청조문화가 조선에 유입된 자취를 연구·규명하고 중국과 조선학자들의 접촉 교류를 구체적으로 살핌으로써 수많은 서적과 탁본이 동쪽으로 전해지고 또 서쪽으로 건너간 사실을 서술해 기존에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조선학계의 뛰어난 일면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의도적으로 높이 현창(顯彰)하고자 한다.4)”
◇한국현대미술과
깊게 연결되는 시각필요
“청조(淸朝) 경학(經學) 연구가 일생의 과제로 나 자신에게 스스로 짐 지운 당연한 의무라고 믿었다.5)”라는 후지츠카의 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번 ‘후지츠카와
난학(藤塚と蘭學), 6월3~8월6일, 추사박물관 개관10주년기념
특별기획전’이 후지츠카 가문자료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그가 일생동안 연구한 추사 김정희 학예(學藝)가 오늘날 한국현대미술과도 깊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간과 할 수 없다. 이번
전시의미를 폭넓게 멀리 내다보는 눈으로 만나야 하는 이유이다.
[참고문헌]
1), 3)=아들 아키나오 글, 2005년 12월/秋史 金正喜 硏究-淸朝文化
東傳의 硏究, 후지츠카 치카시(藤塚鄰)지음, 후지츠카 아키나오(藤塚明直)엮음, 윤철규·이충구·김규선 옮김, 한글완역본, 과천문화원刊 2009,1.
2), 4), 5)=추사 김정희 연구-청조문화
동전의 연구, 후지츠카 치카시 지음, 후지츠카 아키나오 엮음, 윤철규·이충구·김규선 옮김, 한글완역본, 과천문화원刊 2009,1.
#캡션
1=후지츠카 치카시(藤塚鄰)와 아들 후지츠카 아키나오(藤塚明直). 사진제공=과천시 추사박물관(Chusa Museum).
2=(위)후지츠카 치카시 원고지(藤塚鄰 原稿紙, 20세기)=후지츠카 치카시의 당호는 망한려(望漢廬)인데, 이는 경성제대 법문학부 근무시절 서울 종로구 충신동에 살면서 ‘북한산을 바라본다’는 의미와 한(漢)을 생각한다는 중의적인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망한려용전(望漢廬用箋)이 새겨진 252자 원고지와 220자 원고지 등 세 종류이다. ‘후지츠카와 난학’전시장. 사진=권동철.
(아래)이한복 간찰2(李漢福 簡札2) 1941년경, 시전지에 먹=근대 서화가 무호(無號) 이한복(李漢福,1897~1944)이 후지츠카 치카시에게 보낸 편지. 1940년 송별한 이래 동경(東京)의 생활은 편안하며 서고(書庫)는 정비되었는지를 묻고, 완당 선생의 ‘증추사동귀시권(贈秋史東歸詩卷)’의 원본에 의거 일일이 전사(傳寫)하였다고 언급하였다.
후에 이한복은 이 임모본을 후지츠카 치카시에게 증정하였다. 증추사동귀시권(贈秋史東歸詩卷)은 1810년 추사 김정희가 조선으로 귀국할 때 청나라 학자들이 마련한 전별연을 담은 그림이다. 추사 김정희 스승 옹방강(翁方綱,1733~1818)의 제자 주학년(朱鶴年,1760~1834)작품이다. ‘후지츠카와 난학’전시장. 사진=권동철.
3=(왼쪽)청조문화 동전의 연구-가경·도광 학계와 조선의 김완당, 淸朝文化東傳の研究-嘉慶·道光學壇と李朝の金阮堂),후지츠카 치카시 지음,후지츠카 아키나오 엮음,1975. 이 책은 2009년 1월 ‘秋史 金正喜 硏究-淸朝文化 東傳의 硏究(추사 김정희 연구-청조문화 동전의 연구)’로 과천문화원에서 한글완역본으로 출간됐다. 후지츠카 기증실 촬영. 사진=권동철.
(오른쪽)김완당의 입연 강연원고와 완당과 청조문화 원고(藤塚鄰的 ‘金阮堂的入燕’ 講演原稿和 ‘金阮堂和淸朝文化’原稿.Hujitsuka Chikashi’s manuscripts for lectures ‘Kim Wandang’s Visit to Beijing’ and ‘Kim Wandang and Qing Dynasty Culture’,후지츠카 치카시(藤塚鄰),1930년대. 후지츠카 기증실 촬영. 사진=권동철.
[글=권동철 미술전문위원, 미술칼럼니스트, 7월호 2023,
인사이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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