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동철의 한국현대미술脈-理氣와 추사 김정희:작가篇] 조각가 박석원②‥직접성의 흔적과 전환 공명의 유기적 생태학[한국현대추상조각가 박석원,Park Suk Won,박석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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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無題)6429, 80×70×50㎝ 철, 1964. 사진=박석원. |
“하나는 가려져 있고, 장식이 되어 있으며, 덮여 있는 따뜻한 방식이고, 냉정하고 심지어 얼어붙어 있기까지 한 방식이다. 말하자면 하나는 은유의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직설적인 방식이다. 야생의 사유와 계몽된 사유는 때때로 서로 아름다운 화해에 도달하거나 무지개 빛깔을 발하는 간섭을 일으킬 수 있다.1)”
한국현대추상조각가 박석원(1942년~)작품세계에서 1960년대는 철(鐵)의 융화, 70년대는 링(Ring)이 개입된 알루미늄주조의 핸들(Handle)시리즈 특징시대이다. 철은 재료 그대로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작가는 어린시절과 청년기에 한국현대사의 거대한 변곡점을 관통해 왔다. 그러한 시대적 경험이 불꽃으로 녹아든 매재(媒材)가 철이다. “철과 내가 용접기라는 기구를 통해 직접적으로 개입되는 행위로 진행된다. 그런 의미에서 내 정신세계를 대변하는 물질로서의 요소이다.2)”
그 시절의 처절과 참혹, 상처와 혼돈의 감성출구로 만난 “철이 주는 거친 마티에르는 앵포르멜 회화의 표현효과와 마찬가지로 전후(戰後)의 정신적인 방황이나 허무감을 표현하기에 적절했다. 화화이든 조각이든 앵포르멜적인 작품을 제작하던 작가들은 당시 한국 사회에서 팽배해 있던 실존의 문제에 천착하고 있었고, 이러한 작품들은 사회적 갈등과 부조리한 현실에 강열한 저항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3)”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철과 알루미늄주조가 박석원 조각 특유의 덩어리(매스,Mass)를 구축해나간다는 점이다. 두 재료는 본질적으로 관계성(關係性)이라는 동일한 의미망에 놓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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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品S.W-337, 60×65×30 철, 1964~1965. 사진=박석원.
◇철, 물질의 생성과 변형의 세계
열화(熱火)의 힘은 덩어리를 용해한다. 변화와 변질, 절단(切斷)과 결합 다시 해체와 구축을 거듭하면서 경계는 사라지고 마침내 강렬한 빛과 공간이 주는 사유 즉 중후한 깊이감, 꾸밈없이 녹슬어 가는 등 물질변환의 자연성과 근본성질을 드러낸다. 여기서 작가는 그러한 고유성이 나타나도록 묵시적으로 인도해주는 존재자이다.
“불은 내재적(內在的)이고 또한 보편적이다.(…)그것은 질료(matière)속으로 내려가 원한이나 복수처럼 잠재하고 포함된다. 여러 가지 현상 가운데서 그것은 실로 서로 다른 두 개의 가치부여, 즉 선과 악을 동시에 단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진실로 유일한 것이다.4)”
한편 작가는 20~30대에 실천해 왔던 철작업 이후, 수십년이 지난 1990년대 다시 제2의 거친 철의 문제에로 접근한다. 그때는 “원기둥스틸에 불을 가해 그 결과로 빚어진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2천~3천도의 고열을 철에 가하면 몸체를 비틀면서 저절로 어떤 형체를 만들어간다고 한다. 기존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아무도 예상치 못한 존재로 재탄생하는 것에 힌트를 얻어 나온 것이 철작업이다.5)”
열에 의해 자연스럽게 나타난 그 우연성의 구멍(공혈,孔穴) 흔적으로 나타난 이것은 물질의 생성과 변형의 증명이라는 새로운 세계에의 진입을 함의한다. “접힘-펼침은 이제 단순히 팽팽하게 당겨짐-느슨하게 늦춰짐, 수축됨-팽창함이 아니라, 또한 포괄됨-전개됨, 말아넣어짐(involuer) 풀려나옴(e’volur)을 의미한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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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들(Handle)-積7159, 200×60×60 알루미늄주조(Aluminum casting), 1971. 사진=박석원.
◇‘핸들’연작, 새로운 환원의 정신
1970년대 ‘핸들’시리즈는 방법론적으로 움직임((Kinetic) 속에 ‘쌓는다’라고 하는 집적적 형식(Form)을 나타내 보인다. 이 주제가 만들어 질 때 알루미늄주조, 스테인리스 스틸의 링 등 비철(非鐵)의 특수한 물질세계가 개입된다. 이들이 하나의 작품으로 변환될 때 나타나는 사유의 추이(推移)를 주목하게 한다.
“그것은 당연히 최초의 원칙들로 회귀한다는 보다 일상적인 의미 뿐만 아니라 나에게만 고유한 의미에서, 근대성의 작용의 낯섦, 즉 흔히 그것에 대해서는 침묵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 그 낯섦에 대한 탐구라는 의미도 공명하도록 만든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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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들(Handle), 50×250×50㎝ 알루미늄주조(Aluminum casting), 1970. 1974년 명동화랑(박석원 첫 개인전)카탈로그 촬영. 자료제공=박석원. 사진=권동철 2024. © 2026. Park Suk Won. All rights reserved.
특히 여기서 링의 형태분석은 작업의 긴장감, 자제력과 비움, 리듬과 밸런스 등 작가의 반복적 수행(修行)의 산물이다. 마치 “예리하고 가지런하고 건강하고 둥근 것은 필의 네 가지 덕8)”이라는 의미가 기운생동(氣韻生動)이 응축된 필법을 강조하듯, 링의 전체와 부분의 조화로운 원리 역시 그것과 빼닮았다.
‘핸들’의 구조적 특성은 문(門)의 외부와 접촉하는 첫 손잡이 역할로써 현상성(Phenomenality)을 동반한다. “야스퍼스가 환기시키는 존재의 그 둥긂, 혹은 그 존재적 둥긂은 가장 순수하게 현상학적인 명상을 통해서만 그 직접적인 진리 가운데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그것들은 원초성의 흔적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것들은 단번에 태어나고, 그러자마자 완성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보기에는 그 표현들은 현상학의 경이들이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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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積意)시리즈, 철 용접. 김세중미술관 초대전. 사진=권동철 2022. © 2026. Kwon Dong Chul. All rights reserved. |
◇삶의 역사 관계의 수렴과 확산
이처럼 ‘핸들’시리즈는 링과 물질이라는 문제를 개입시켜 공간 속 확산의식의 움직임을 통한 ‘쌓아지는’ 형식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하여 자연공간 속에 있는 이 예술적 구조물을 만나는 시선은 매우 흥미로움을 제공한다.
이를테면 “(…)새의 둥근 외침은 이 소리가 만들어진 순간에 마치 하나의 하늘처럼 시든 숲 위에 퍼진다. 모든 것이 순순히 이 외침 속에 흡수 된다. 경치 전체가 소리도 없이 그 속에 있는 것 같다. 커다란 바람이 그 속에 얌전히 들어가는 것 같다.10)”
이처럼 링이 우주(Universe)로 확산될 때, 작가의 사유는 ‘적의(積意)’에 돌입하게 된다. “서로간의 관계성에서 의미성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내면의 세계는 나의 삶의 편린 또는 삶의 표상이 되는 작업세계로 귀결된다.11)”
다시언급하면, ‘핸들’에서 행위는 축적이다. ‘핸들’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발전을 시켰는데 그런 흔적 또는 결과론적으로 우주적인 둥근형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 완성된 형태를 철, 비철을 통해서 더 완벽하게 형상화, 구체화 시켜나간 관계이다. 그럼으로써 “의식은 살아 있는 경험의 자기현존12)”이라는 설득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박석원 조각가의 철, ‘핸들’시리즈가 우주자연계와 유기적 관계의 통합(統合)을 모색하는 서사방식이다. 즉 작위(作爲)를 통해서 해체된 어떤 물질이 환원과 확산으로 연결되는 정신의 울림, 이것이 본질이다.
[글=권동철 미술전문기자·전문위원. 인사이트코리아 6.25. 2026.]
[참고문헌]
1),7)우리는 결코 근대인 이었던 적이 없다(Nous n'avons jamais ete modernes), 브루노 라투르(Bruno Latour) 지음, 홍철기 옮김, 갈무리.
2),11)박석원(Park Suk Won)작가, 나의 작업과 삶의 표상, 2026.
3)김이순 미술사가, 철의 원초성에 대한 음미, 2007.
4)불의 정신분석 외(外), 바실라르(G.Bachelard)著, 민희식 譯, 삼성출판사.
5)서성록 미술평론가, 박석원의 積意, 2011.
6)주름-라이프니츠와 바로크(LE PLI. Leibniz et le baroque), 질 들뢰즈(Gilles Deleuze)지음, 이찬웅 옮김, 문학과 지성사.
8)완당전집 제8권 잡지(雜識), 한국고전번역원 신호열 譯, 1988.
9)공간의 시학(La poetique de l’espace), 가스통바슐라르(Gaston Bachelard)지음, 곽광수 옮김, 동문선.
10)릴케 시집, R.M.릴케 지음, 시 ‘두려움’ 中, 송영택 옮김, 문예출판사.
12)해체,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지음, 김보현 옮김, 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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