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정영주‥회귀본능의 힘 온기의 가족사회학[정영주 미술가,정영주 작가,Joung Young Ju,鄭英冑]

 

초록빛 꿈, 194×130.3paper on canvas, acrylic, 2023. 사진가 김홍석. © 2026. Joung Young Ju. All rights reserved.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지 오래/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1) 

산비탈을 따라 들어 선 달동네는 초저녁부터 깊숙한 잠에 빠진 듯 고요하다. 키 작은 지붕들은 갈라진 곳을 메워 세월의 굴곡을 가늠케 한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과 대비되는 좁은 골목길은 아렴풋한 추억의 미로처럼 미묘한 여운의 흔적으로 불빛과 동행했다. 화면은 아스라한 유년의 장면(scene)을 떠올리듯 점점 흐릿한 채도의 파노라마를 보여주며 공간의 고유성을 알려준다. 

우리는 순백의 중립적인 공간 안에서 살지 않는다.()우리는 어둡고 밝은 면이 있고 제 각기 높이가 다르며 계단처럼 올라가거나 내려오고 움푹 패고 불룩 튀어나온 구역과, 단단하거나 또는 무르고 스며들기 쉬우며 구멍이 숭숭 난 지대가 있는, 사각으로 경계가 지어지고 이리저리 잘려 졌으며 얼룩덜룩한 공간 안에서 살고 죽고 사랑한다.2)”

 

Summer Walk, 73×53paper on canvas, acrylic, 2025. 사진가 김홍석.


공동체문화 따스한 정()

화면은 현재시점에서 기억된 달동네 풍경이다. 6.25 전쟁피난민, 1960년대 산업화와 도시화로 이촌향도(離村向都) 농민들이 대거 유입되었던 사회변동의 단면과 맞물리는 서울변두리지역이 배경이다. 

“1966년 서울의 주거실태(통계청)를 보면, 주택 부족률이 50%이고, 주택 당 인구수는 10.5인이었으며, 무허가주택 거주자 수는 총인구의 33%인 약 125만 명에 달했다.3)” 이것이 암시하듯, 당시 전국농촌인구 상당수가 서울달동네에 정착했고 각 지역의 공동체문화 등 전통민속의식이 유입되어 명절 등에는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했을 것이다.

 

Summer Walk, 73×53paper on canvas, acrylic, 2025. 사진가 김홍석.


이 맥락에서 정영주 회화는 대가족을 중심으로하는 유대감과 집안의 정체성에 관한 서사(敍事)이기도 하다. 서울의 급속한 성장 이면, 삶의 고락이 바람처럼 흔들리는 밀집공간에서도 한 가족의 근본은 강건했고 아이는 유토피아를 꿈꾸며 무럭무럭 성장하는 것이다. 

나는 1970년대 산업화 속에서 자랐다. 식구 모두가 같이 밥먹는 저녁이 제일 행복했었다. 나의 그림엔 따스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회귀본능이 스며있다. 작품 속 저 마을, 저 집엔 내가 갈구하는 그런 따스한 정()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기다림이 여전하다.4)”

 

사계-여름, 97×145.5paper on canvas, acrylic, 2025~2026. 사진가 김홍석.  © 2026. Joung Young Ju. All rights reserved.


한편 정감어린 달동네의 표출은 관객으로 하여금 기억의 편린들을 일깨워 단박에 그 익숙한 골목으로 성큼 들어서게 한다. 바로 정영주 미술가 회화가 디지털미디어시대에 아름다운 추억공간이라는 코드로 동시대성(Contemporaneity)의 한국적미감으로 승화시키는 지점이다. 

동시에 산업화 속을 숨가쁘게 달려온 한국의 중장년에게 의 존재론적 성찰에 관한 회상의 시간을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사람의 잔을 마시고 싶다. 추억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 소주잔을 나누며 눈물의 빈대떡을 나눠먹고 싶다. 꽃잎 하나 칼처럼 떨어지는 봄날에 풀잎을 스치는 사람의 옷자락 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나라보다 사람의 나라에 살고 싶다.5)”

 

[참고문헌]

1)기형도 엄마 걱정, 입속의 검은 잎, 문학과 지성사.

2)헤테로토피아(Les Hétérotopies),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지음, 이상길 옮김, 문학과 지성사.

3)장용해, 서울중계동백사마을의 건축적특성연구, 서울과기대 주택대학원, 2012. RISS.

4)정영주 작가, 나의 그림과 정(), 2026.

5)정호승 서울의 예수, 흔들리지 않는 갈대, 시인생각.

 

[=권동철 미술전문기자·전문위원. 662026. 인사이트코리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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