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동철의 한국현대미술脈-理氣와 추사 김정희:작가篇] 단색화가 최명영⑤‥우연과 필연성 획(劃)의 알고리즘[Conditional Planes,平面條件,복잡계(complex systems),셀(cell),Choi Myoung Young,최명영 작가,최명영 화백,한국의 단색화]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단색화가 최명영. 사진=권동철. © 2026. Choi Myoung Young. All rights reserved.


그러나 그럼 나는 무엇인가? 생각하는 물체다. 생각하는 물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의심하고 이해하며 단언하고 바라며 의도하고 거절하는 것이며, 또한 상상하고 느끼는 것이다.1)

생명성의 의지와 질서가 드러나는 화면은 획()들이 품은 밀도의 작용에서 강렬한 에너지가 발생되고 있다. 단순해 보이는 획들은 마치 짙은 안개 속 경계가 사라진 심연, 끝없이 번지며 팽창해 나가는 긴장감을 띤다. 

작가의 몸을 통한 반복붓질에 드러나는 이 획들의 미묘한 차이는 전체의 뉘앙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강한 스트로크의 붓질이 이뤄내는 동세(動勢)는 한번에 스윽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몇 번을 다시 보면, 그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레이어(layer)의 공간감과 마주하게 된다.

 

공간을 스스로 속에 품고있는 평면

최명영 단색화 평면조건(Conditional Planes,平面條件)시리즈 중, 방안지(Grid paper)작업을 선보인 것은 1970년대 후반이다. 수직·수평선이 교차하는 정방형 기하학적구조인 그리드의 평면성을 기반으로 2010년대부터 현재까지 작품세계의 확장을 보여준다. 

()’시리즈는 단조로운 행위, 소재, 색채, 표면감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와 상태로부터 출발하여 선의 반복과 리듬의 미묘한 차이, 균일하게 나눈 칸에 내재된 기운이 연동되는 체계(system)이다. 따라서 시각적으로 요동치는 획은 격자 안에서만 의미성을 갖는다

그것은 상호관계(Interrelationship)적인 특성 때문으로 그리드, 복잡계(complex systems) (cell)의 구조적 특질인 생성의 문제가 회화적 핵심요건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평면 위 이러한 이미지는 어디서 기인하는가? 최명영에게 있어 무형(無形)이란 형()이 없는 형()이며, 또 평면은 일종의 구조화된 공간, 모든 공간을 포용하는 공간을 스스로 속에 지니고 있는 평면이다.2)” 

부연하면 이 우주 속에서는 독자적인 사건이란 아무것도 없고, 각각의 사건들은 서로 의존하고 있으며 만물 속에 모든 것이 내재하고 있거나 서로를 포섭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은 상()인 동시에 다른 것들의 반사경3)”이 되는 것이다.

 

평면조건(Conditional Planes,平面條件)25-8-2, 56×78Graphite, Oil on Section Paper, 2025. 사진=권동철.

치중화(致中和), 자기조직화의 창발

이러한 상하좌우 획이 통일된 전체로 형성될 때 자기조직화의 창발성(emergence)을 드러낸다. 언뜻 획의 강약, 여백이 만드는 미묘한 괘적 등의 리듬감이 작위적으로 컨트롤될 듯 보이지만 실상은 사뭇 규제되지 않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실제로 대략적으로 연결 된 모든 집합체에는 이 창발적인 특성이 항상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이런 창발적 속성들에 관한 이론들은 물리적 인지적 현상들에 관한 다양한 단계의 기술을 꿰뚫어 종합하는 자연적인 연결고리가 된다.4)” 

뿐만 아니라 간극은()긴장과 낯섦을 체험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젖히는 일5)”이며 동시에 프랙탈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기하학적 대상으로, 완벽한 자기유사성을 가진 수학적 형태6)”인것과도 연동된다. 

한편 자아를 찾아가는 끊임없는 훈련의 유교적 예학(禮學) 역시 자율적 수양론의 조화를 큰 덕목으로 여긴다. “본연지성은 기질지성의 여하에 따라 드러나기도 하고 가려지기도 한다. 따라서 기()() 정신적·물질적인 일체 현상과 더불어 유형적이고 유위적인 것을 모두 포함한다.(...)그리하여 우리는 치중화(致中和)의 주체로서의 인간 완성의 길이 율곡 철학7)”속에 열려 있음을 보게 되는 것이다.

 

평면조건25-5B, 78×107Graphite, Arylic on Paper, 2025. 사진=권동철.


일상의 호흡, 축적과 체화의 독창성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듯 한 획 사이 우러나는 여백엔 최명영 작가의 일상에 맞닥뜨려서 체득하고 환기된 심연의 의식과 호흡이 스미어 있다. 획의 움직임이 겹겹의 축적을 뚫고 일어나는, 대단히 촉각적 뉘앙스의 감각으로 다가오는 의미의 배경이 된다. 

이점은 가슴속에 오천 권의 문자가 있어야만 비로소 붓을 들 수 있다.8)”하던 추사의 쩌렁쩌렁한 울림을 떠 올리게 한다. 방대한 지식의 축적과 체화(體化)가 펼쳐내는 통찰세계와 끊임없는 반복의 수행성 위에 피어나는 한 송이 꽃, 바로 독창성이라는 지점에서 조우하기 때문이다. 

색을 보는 것을 배우는 것은, 시각의 어떤 스타일을 획득하는 것이고, 자기-몸의 새로운 사용을 획득하는 것이며, 몸 도식을 풍부히 하고 재조직하는 것이다.(....)즉 그것은 스스로의 균형을 이루려는, 체험된 실질의미(의미표현)들의 전체이다.9)”

 

평면조건25-5F, 106×78Graphite, Oil on Paper, 2025. 사진=권동철.


예측 불가능한 작용으로써의 획()

최명영 단색화 시리즈는 회화적 실현에 대한 물음과도 관계된다. ‘평면조건존재방식에 대한 규명이자 성립요건과 맞물린다. 

시선을 모으는 중심의 부재(不在), 물질성과 몸 행위의 흔적을 그대로 드러내는 일루전의 배제, 반복성, 붓질의 스트로크 자국, 성격을 드러내지 않는 중성적 색채의 단색조, 층위에 의한 내면의 공간화 등 제반 요건들의 부침, 통어(統御)를 통해 질료와 정신의 화학적 반응으로 자리잡음으로써 예측 불가능한 세계를 구현코자 하는 일10)”이 그것이다. 

따라서 가까이 또는 멀리서 화면을 바라보았을 때 반복축적에 의한 질감표면이 다른 상태인 의사평면(疑似平面)으로 설정된 장(field) 속에 균질한 접촉감의 질료나 규정지을 수 없는 색조의 중첩된 자리 잡음은 그 행위의 반복 틈바구니에서 예기치 않은 변화의 징후를 잉태하게 된다.11)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것은 단색화 평면조건의 요체인 무목적성과 반복성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질료(물질)가 정신화 되는 기반이 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예측하지 못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질서의 기제(機制)가 평면에서 작동된다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평면조건23-5-2, 56×76Graphite, Arylic on Paper, 2023. 사진=권동철.


한국단색화 지평의 격상과 존재가치

이 맥락에서 관람자는 의 역동적 움직임을 통하여 자아의 감각이 일깨워지고, 물질과 시간의 흔적, 체화된 호흡의 깊이감, 정신성으로 승화 된 내면화의 질서 등 예측 불가능한 경험을 체감하는 장()으로서 최명영 평면조건과 마주하게 된다. 

무엇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단색화 작업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된 이 획은 그 자체로써 신선한 감흥의 경험을 제공한다. 디지털시대 알고리즘적 프로세스(process)와 연결되는 반복구조의 조형어법은 한국단색화를 한 단계 더 격상시킨 우주적 질서의 새 지평으로 인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광야를 고독하게 걸어가는자만이 들을 수 있다는 밤하늘 별무리의 노래같이, “()정신성(mentality)은 그것이 조절된 활동 속에 나타날 때, 선택하고, 강조하고, 분해 하는데 눈부신 능력을 발휘한다.12)” 이것이 단색화가 최명영 시리즈의 자율적 창발성이자 존재가치이다.

 

[참고문헌]

1)데카르트, 성찰2(Meditation)1641./뇌의식의 탄생(onsciousness and the Brain), 스타니슬라스 데하네(Stanislas Dehaene )지음, 김영보 감수, 박인용 옮김, 한언.

2)이일(李逸) 미술평론가, 條件지어진 平面, 1980.

3)화이트헤드와 화엄형이상학(Whitehead und Huayen-Metaphy), 김진 지음, 울산대학교 출판부, 2004.

4)몸의 인지과학(The Embodied Mind:Cognitive Science and Human Experience), 프란시스코 바렐라(Francisco Varela), 에반 톰슨(Evan Thompson), 엘리노어 로쉬(Eleanor Rosch) 공저, 석봉래 옮김, 이인식 해제, 김영사.

5)고요한 변화(Les transformations silencieuses), 프랑수아 줄리앙(François Jullien)지음, 이근세 옮김, 그린비.

6)우발과 패턴, 마크 뷰캐넌 지음, 김희봉 옮김, 시공사.

7)율곡 이이, 예문동양사상연구원·황의동 편저, 이동준 글 , 예문서원.

8)완당전집 제8권 잡지, 한국고전번역원, 신호열 , 1988.

9)지각의 현상학(Phénoménologie de la perception),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ty)지음, 주성호 옮김, 세창출판사.

10)최명영 작가, 평면조건의 조형적 특성, 1982.

11)최명영 작가, 주어진 소재들에 접촉하는 行爲의 다스림, 1982.

12)관념의 모험(Adventures of Ideas),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지음, 오영환 옮김, 한길사.

 

[=권동철 미술전문기자·전문위원, 6122026. 인사이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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