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동철의 한국현대미술脈-理氣와 추사 김정희:작가篇] 조각가 박석원①‥비움과 평형 그 절제의 기품[Park Suk Won,박석원 작가,朴石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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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파주 작업실에서 조각가 박석원(Park Suk Won). 사진=권동철. © 2026. Kwon Dong Chul. All rights reserved. |
“원형을 사용하는 것은 한 문명이 하나의 이미지를 어떤 형태들로 사용했는지에 대한 역사를 수반한다. 하나의 원형은 항상 부차적으로 연상되는 모든 실례를 수반하기 때문이다.1)”
한국현대추상조각의 거장 박석원(Park Suk Won,朴石元,1942년~)조각가는 홍익대학교 조소과 ‘60학번’이다. 철, 알루미늄, 나무, 돌, 한지평면작업 등의 물질구조를 독창적 조형세계의 시각화로 승화시킨 65년 여정이다.
1970년대 이후 접합(接合)을 하면서 ‘쌓는다(集積)’는 의미와 그 사이 소멸된 공간을 채워나가는 융합관계가 초기의 몸짓이었다. 점차 분할(分割)이 되면서 나타나는 틈의 문제들이 종합적으로 정리가 되어가는 과정을 투시(透視)하고 깊이 관조하면서 그 속에서 ‘메우는 것’의 방식이 파생되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후 사물의 절단(切斷)을 통해 성격이 전혀 다른 개체의 단위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형식을 재조립·재구축하는 상황으로 집결하는 접합(接合) 즉 환원(還元)을 통한 자연의 본성을 드러내는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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積8672, 220×50×50㎝ 마천석 브론즈 1982~85. 사진=박석원. ▷자연석과 중간에 링(ring)이라는 철(鐵)이 개입된 ‘핸들’시리즈이다. 이 두 첨예한 존재가 기하학적 세계를 넘어 조화를 이루고 현대적 감성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주는 형식을 보여준다. |
◇스스로 내부를 드러내는 매스
박석원 작업은 생성과 소멸의 흔적을 껴안은 일체의 상호작용(Interaction)이 응축된 자연상태의 덩어리(매스,Mass)에서 출발한다. 이 매재(媒材)들은 작가의 몸을 거치면서 불필요한 조건들을 덜어내고 자연의 내밀한 속살의 공간이 생생하게 부각되는 우아한 실루엣의 단순미로 변모(變貌)한다. 작품형식은 물론 비례와 균형, 리듬성과 팽팽한 긴장감이 드러나는 개별성, 공간감을 통한 시각적 자유로움 그리고 우연성까지를 수용하는 미감으로 발현된다.
이 맥락에서 작가는, 구름이 걷히면 오색창연한 꽃들이 능선 가득한 향연처럼 덩어리 스스로가 내부를 드러내도록 인도(引導)하는 조율자가 된다. 때문에 그의 작업에서 덩어리는 하나의 완전한 구축(構築)의 대상이 아니라, 본래성(essential nature)의 환원과정과 관계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박석원 조각가가 물성을 다루는 최소한의 태도이다.
“천하에 시초가 있다. 시초는 천하 만물의 어머니, 근원이다.(…)미세한 것으로부터 사물의 도리를 아는 것을 명(明)이라 하고, 유약한 것을 지키는 것을 강(强)이라 한다. 天下有始. 以爲天下母.(…)見小曰明, 守柔曰強.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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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페이지갤러리(The Page Gallery)-비유비공(非有非空,re-and de-)개인전 전시전경. 사진=권동철 2024. ▷은은한 조명아래 돌, 나무, 철, 시멘트 등의 작품들은 오랜 친숙미(親熟美)의 편안함을 발산했다. |
◇절단과 환원에 드러나는 실재
박석원 작업의 방법론적 핵심 축(軸)은 절단과 환원을 통해 스스로 드러나는 실재 곧 본질이다. 자르고, 붙이고, 메우는 몸의 감각으로 새로운 하나의 형상(形象)으로 드러내 보일 때 그러한 당연한 행위의 가치가 일어난다고 보는 의미의 지점이다. “즉 작품 내부의 표정이 때로는 더 강렬한 새 공간을 형성하며 주변공간을 규정하기도 하는, 구체적이고 현실적 현상으로서 자연공간에 융화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3)”
따라서 자연에서 옮아와서 다시 그 덩어리로 돌아오지만 애당초 처음의 것과는 전혀 다른, 매재에 축적된 독특한 결정체의 내부구조가 어떤 변화나 발전이라는 문제로 접근되는 환원(還元)이다. “그러니까 소재와 형태가 자신의 재료와 자신의 형식과 더불어 절대적 동일성 속에 있으면서 현존재 내로 들어섬으로써 우리는 조각을 그러한 예술형식의 규정성으로 가지게 된다.(…)내용은 형식을, 형식은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즉 순수한 보편성 속에 있는 통일인 것이다.4)”
한적한 공간에 덩그러니 서 있는 돌탑(塔)의 미묘한 여운의 그림자, 휘어진 숲길을 돌아서다 고고(孤高)하게 서 있는 한 사람을 만난 듯 그런 멋스러움과 조우하는 천연(天然)한 광경이기도 하다. “물론 리기지묘(理氣之妙)라는 말은 그 의미가 매우 다양한 관점이지만, 특히 율곡은 일체존재의 내면구조를 설명할 때 이 개념을 자주 원용한다. 율곡에 따르면 일체 존재는 형이상자로서의 리(理)와 형이하자로서의 기(氣)로 되어 있는데, 이 양자는 시간적 선후나 공간적 이합(離合)이 없이 본래부터 오묘하게 합해져 있다.5)”는 것과 다름이 없다.
박석원 예술행위는 대상의 형태·무늬·틈새 등 원형과 철의 산화(酸化)처럼 자연상태를 용인(容認)하는 것까지 수용한다. 이러한 자연성과 우연성이 엮어지는 “그것은 예기치 못할 변화와 감성의 원초성과도 흡사한6)”것으로 박석원 작품세계의 심미적(審美的) 생명력과 깊게 연동된다.
“우리의 지각은 원천적으로 정신 속보다는 사물 속에, 우리 속보다는 우리 밖에 있다. 다양한 종류의 지각들은 실재의 그만큼의 진정한 방향들을 표시한다.(…)의식과 물질, 마음과 몸은 그렇게 하여 지각에서 접촉7)”에 들어가 덩어리가 평형(平衡)과 환원의 극대화된 상황인 그때에 작업의 작위(作爲)적 행동은 멈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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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원 작가 친필 사인(Sign). 사진=권동철. © 2026. Kwon Dong Chul. All rights reserved. |
◇구조의 응축이 튀어나온 사의적 환원
청량한 햇살이 풍상에 깍인 흔적의 돌과 매끈하고 차가운 알루미늄 링(ring)사이 스며들어 미묘한 영상(映像)으로 흩어지듯, 물성이 직접 내부를 보이는 내면(內面)에의 전이(轉移)가 되는 에너지의 파문(波紋)….
균형과 환원으로서 “표상작용의 구조는 의미형성 그 자체이기 때문에, 무한대의 표상작용에 처음부터 가담하지 않고서는 ‘실제효과를 지니는’ 담화에 가담할 수 없다.8)” 그것은 박석원 작가의식에 내재 된 ‘나’를 깊게 들여다 볼 수 있게 하는, 다정스럽고 거림감 없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는 분신(分身)으로써 아름다움의 발현과 연속된다.
마치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의 “명작 ‘세한도’도 거기에 서린 고아한 품격이 좋은 것이지 경물을 묘사한 필치의 능숙함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추사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기교를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조화로움의 경지로 돌아가게 하라.’ 그리하여 얻어낸 격조라는 추상적인 미적가치가 추사를 비롯한 문인화가들의 이상9)”이었던 것처럼!
그리하여 박석원 작업 특유의 간결하고 소박하며 고상한 풍취의 현대미는 사의적 환원(寫意的 還元)이 컨트롤 되는 화룡점정의 궁극지점 바로 한국미(韓國美)라는 덕목이 도저하게 흐르고 있는 것과 다름 아니다.
“풍령(風鈴)이 흔들릴 때마다 한옥의 부드러운 곡선 끝에서 붕어 한 마리가 허공으로 날아 오르던 아련한 기억처럼, 내 몸에 배어있는 우리전통의 정체성을 작품 속에 응용하려 무던히 노력해 왔다. 그러한 질서를 내재한 한국적인 구조들이 응축되어 튀어나온 것이 내 작업의 정신성이자 근원이다.10)”
[참고문헌]
1)장자:영혼의 변화를 위한 철학, 로버트 앨린슨(Robert E. Allinson)지음, 김경희 옮김, 그린비.
2)도덕경, 노자 지음, 소준섭 옮김, 현대지성.
3)박석원 작가, 환경공간의 해석, 1978.
4)헤겔 예술철학-베를린 1823년 강의. H.G. 호토의 필기록,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지음, 한동원. 권정임 옮김, 미술문화.
5)율곡 이이, 예문동양사상연구원·황의동 편저, 예문서원.
6)박석원 작가, 변화와 감성의 원초성, 1995.
7)물질과 기억((Matière et mémoire), 앙리 베르크손(Henri Bergson)지음, 최화 역주, 자유문고.
8)해체,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지음, 김보현 옮김, 문예출판사.
9)추사 김정희: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유홍준 지음, 창비.
10)박석원 작가, 덩어리-변화와 발전의 환원, 2026.
[글=권동철 미술전문기자·전문위원. 5월21일 2026. 인사이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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