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동철의 한국현대미술脈-理氣와 추사 김정희:작가篇] 단색화가 최명영④‥만물의 꽃불 물질과 정신의 정합성[Choi Myoung Young,Dansaekhwa: Korean Monochrome Painting,최명영 작가,최명영 화백,비선재 갤러리,Gallery Bisunjae]
![]() |
작업실에서 최명영 화백, 사진=권동철(2021).
“그것은 움직인다. 그것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것은 멀다, 그리고 그것은 가깝다. 그것은 이 모든 것 속에 있으며 이 모든 것 밖에 있다.1)”
‘최명영 평면조건-한지: 송곳작업’시리즈는 근본적으로 한국단색화의 실체적 형식과 정체성에 대해 오랜세월 깊이 천착해온 산물이다. 1970년대 중반 첫선을 보인 이후 80년대초 부터 작가의 주요작업으로 자리잡았다. 90년대 중반을 넘어오면서 사경(寫經)의 수행적 사유로 더욱 깊어진 정신화 공간성을 구축,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작업해 오는 연작이다.
방법론의 핵심은 한지 배면(背面)에서 송곳으로 반복하여 뚫는 이른바 천공(穿孔)의 숨 혈(穴)이다. 표면에 오톨도톨 도드라진 흔적을 남긴다.
의식과 감성이 합류하는 이 복합적 드러남은, “결국은 동일한 신체가 감각을 주고 다시 그 감각을 받는다. 이 신체는 동시에 대상이고 주체이다. 관객으로서 나, 나는 그림 안에 들어감으로써만 감각을 느낀다. 그럼으로써 느끼는 자와 느껴지는 자의 통일성에 접근2)”하고 있다.
![]() |
평면조건(Conditional Planes), 63×93㎝ Korean ink on Hanji, 1981. 사진=권동철.
◇실재와 비실재를 아우르는 전체성
이러한 ‘한지와 송곳’의 맞닿음은 하나의 충돌이자 종이를 관통함으로써 서로 다른 층위가 접속되는 연속성을 품게 된다. “일종의 구조화된 공간, 즉 모든 공간을 포용하는 공간을 스스로 속에 지니고 있는 ‘평면조건’3)”으로 전환된다는 점이다.
이 순간 화면은, “물질과 정신의 이완없이 실현되어야 할 정합성(整合性)4)”을 띠며 운동성과 부동성, 실재와 비실재, 밤하늘을 수놓은 빼곡한 별들의 노래를 아우르는 통찰(洞察)로서 전체성(Holism)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공기에, 고지에, 빛에, 힘차고도 부드러운 바람에, 또 순수하고도 강한 호흡에 잘 다듬어진 시적은유들은 자연스럽게 결합한다. 이러한 통합은 존재 전체를 고무한다.5)”
![]() |
평면조건(Conditional Planes), 181×227㎝ Oil on canvas, 1992. 사진제공=비선재 갤러리(Gallery Bisunjae).
◇참된이치 그 생성과 소멸의 사경화
여기서 일찍이 자아를 비추는 자각으로서의 이심전심인 선(禪)을 역설한 금구(金句)를 보자. “달마(達摩)가 서역에서 와서 진단(震旦)의 문자가 번역으로 와전되고 붓으로 받아 쓰는 데서 와전되고 윤색하다 와전되었음을 알았기 때문에 일체를 소제해 버리고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했으니 이는 부득이한 일이었던 거요.6)”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서간(書簡) 일부이다. 참된 이치는 말로써 미화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가꾸는 과정이라는 강렬한 방증이 담겨있다. 이는 한국성리학의 이(理)와 기(氣)가 한 가지의 체계라는점 또 우주만물의 생성과 소멸을 껴안은 개오(開悟)의 장(場)으로써 순수반복의 수행성을 지속하는 ‘한지: 송곳작업’세계와 깊게 연결되는 원리이다.
“중이 염불하듯, 나는 그림을 그리고 중이 화두를 남기고 떠나듯, 나는 그림을 남기고…. 끝없는 겹겹의 시공에 존재하는 동시성(Synchronicity)을 껴안은 시방삼세 제망찰해(十方三世 帝網刹海)여!7)”
![]() |
(왼쪽)평면조건(Conditional Planes), 76×56㎝ Korean ink on Hanji, 2020. (중앙)121×81㎝ Acrylic on Paper, 2020. (오른쪽)76×56㎝ Acrylic on Paper, 2020. 사진=권동철.
◇전통회복기운 단색화 위상의 격상
이와함께 1970년대 한국단색화발현에 내재된 우리전통회복기운의 논리성을 간과할 수 없다. ‘한지: 송곳작업’엔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등에 업어 키운 어머니와의 상호접촉감, 공동체농경문화의 품앗이 등의 다감성(多感性), 새봄 만물이 소생하는 금수강산에 피어오르는 흙내음의 풍토성이 깊게 내재되어 있다.
이러한 70년대 한국미학론인 확장과 환원의식 속, 현재도 살아 숨쉬는 유기체로써 한국인의 유전자를 예증(例證)해 내는 것이다. “그의 작품세계는 보는 이에게 소박한 삶의 태도와 미덕을 북돋아주는 역할을 해줄 수 있으리라고 본다. 욕망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여전히 중요한 것의 가능성을 상기시키는 것이 예술가의 몫이라면 최명영은 바로 그런 일을 기꺼이 수행하는 작가임이 분명하다.8)”
따라서 이 지점은 최명영 단색화가 동시대 한국현대미술의 정체성과 위상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렸고 확장시켰다는 그 성취를 격려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것은 ‘한지: 송곳작업’이 감정과 사유, 영혼을 담는 그릇으로서 은은하게 가슴으로 젖어드는 체험의 운율로 승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각 단위는 본질적으로 그 사회의 모든 다른 구성원과 관계를 맺고 있고, 각 단위는 그 자체 모두를 포용하는 전 우주를 나타내는 하나의 소우주이다. 어떤 두 현실태도 서로 분리될 수 없다. 하나하나는 모든 것 속의 모든 것이다.9)”
[글=권동철 미술전문기자·전문위원, 4월13일 2026. 인사이트코리아]
[참고문헌]
1)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The Tao of Physics), sa-Upanishads, 5. 프리초프 카프라(Fritjof Capra)지음, 이성범·김용정 옮김, 범양사.
2)감각의 논리(Francis Bacon: The Logic of Sensation), 질 들뢰즈(Gilles Deleuze)지음, 하태환 옮김, 민음사.
3),4)최명영 작가, 주어진 소재들에 접촉하는 行爲의 다스림, 1982.
5)공기와 꿈(L'air et les songes),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지음, 정연란 옮김, 이학사./니체-힘에의 의지(volonté de puissance), 비앙키 옮김.
6)완당전집 제5권 서독(書牘), 백파에게 주다(與白坡), 한국고전번역원 신호열 譯, 1988.
7)최명영 작가, 명정록(明正錄), 2019.
8)서성록 미술평론가, 안으로 열린 풍경-최명영의 종이 작업, 2023.
9)화이트헤드와 화엄형이상학(Whitehead und Huayen-Metaphy), 김진 지음, 울산대, 2004.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