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동철의 한국현대미술脈-理氣와 추사 김정희:작가篇] 단색화가 최명영③‥치환과 환원 필연의 영원성[Choi Myung Young,최명영 화백,최명영 작가,평면조건,Conditional Planes,Dansaek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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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조건(Conditional Planes,平面條件), 146.5×112㎝ Oil on canvas, 1975. 사진=이만홍.
“어떤 사물의 진본성이란 그 사물에 있어 근원으로부터 전해질 수 있는 모든 것을 총괄하는 개념으로, 여기에는 이 사물이 물질적으로 존속해 있다는 점에서부터 그 역사적 증언력까지가 모두 포함된다.1)”
1970년대 중반 최명영 단색화 ‘평면조건’의 ‘지문 작업’은, 물질과 정신성을 등식(equation)관계로 놓는데서 출발한다. 린넨, 아사 천(布)캔버스에 질료를 지문(指紋)으로 문질러 층(層)구조를 반복해가는 규칙적 작업이다. 2차원평면회화의 성립근거를 규명하고자 하는 이 연작으로 1976년 첫 개인전을 가졌고 오늘날까지 50여년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지문연작의 발생은 1970년대 초 우리전통회복에 대한 기운이 일어났던 미술계의 ‘확장과 환원’논리에 고무된 바 없지 않지만, 몸(신체)을 매개로 회화적 실존을 구현하고자 한 최명영 작가의 동시대국제미술조류에 조응하려는 새로운 창조의 실마리가 그 고뇌의 배경이 된다.
이 반복 작업은 “(...)정신이 맑고 기운이 안정되는 때를 만나 엄숙한 상태를 유지하면, 마음과 몸이 붙잡지 않아도 저절로 흐트러지지 않고, 팔 다리가 억제되지 않아도 스스로 공손하고 근실해져서, 옛 사람들의 기상이 좋던 때도 반드시 이와 같았을 것이라 생각될 경우가 있었다.2)”는 심학(心學)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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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조건, 80×100㎝, Acrylic on canvas, 2017. 사진=이만홍. |
◇호흡의 정화 그 수행의 기원
화면은 “신체를 가지고 있는 우리 인간이 반복해서 호흡하지 않으면 죽는 것과 같이 하나의 평면위에서 물질성과 정신성의 호흡관계3)”로 드러난다. 질료의 접촉감을 집적(集積)하고 흡인해내고 있는 이미지(象)는, 작가의 몸 지각을 통과한 미증유의 특이성(特異性)으로써 고유한 독창성이 부여된 자국이다. “동일한 것은 곧 받아들임(사유)이기도 하고 또 존재이기도4)”한 근거가 된다.
그리하여 일체를 바로잡는 성찰(省察)로의 이행경로가 되고 필연과 영원성이 내포된 시공을 뛰어넘는 소통의 장(場)으로 확장된다. “의식은 몸을 매개로 사물에 있는(사물로 향한) 존재이다. 하나의 운동을 습득하는 것은, 몸이 운동을 이해했을 때, 즉 몸이 그것을 자기의 ‘세계’에 통합했을 때5)”와 다름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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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조건, 80×100㎝(detail) Oil on canvas, 2017. 사진=이만홍. |
한편 “최명영 작가가 무지의 캔버스를 균등한 지인(指印)으로 뒤덮는다고 했을 때, 물질적 현존성(現存性)을 그 행위를 통해 ‘그것이 아닌’ 상태로 치환(置換)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그는 현실의 검증에서 그 치환으로 옮겨가며 다시 그 치환은 세계의 잠재적 현존성으로 환원되어6)”간다.
그 내부엔 시간을 머금은 개체들이 이루는 공간, 구조를 이루지 못한 병렬의 틈새, 생성과 퇴화(退化)의 무수한 자국들을 껴안아 있다. “말하자면 서로가 서로를 밝혀주면서 이어지는 관습들의 체계로 설명되는 세계7)”의 기호로 읽혀진다.
그리하여 무량겁의 어둠을 털어낸 고비(古碑)잔결이 간직한 시문이 규정지울 수 없는 경지로 안내하는 시그널이 되듯, 바로 한국의 정체성(Korean Identity)이라는 필연과 조우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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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영 개인전 전경, 더페이지갤러리(The Page Gallery), 2022. 사진=권동철. |
바로 그 지점에서, “변관식(卞寬植)의 먹을 쌓고 또 그 위에 중첩하는 비비적거림의 적묵법, 박수근(朴壽根)의 촉가적인 덧쌓임 그리고 호흡의 정화(精華)로 여과되는 사유과정을 통과하는 나의 반복성과 무엇 다를 것인가!8)” 이는 평소 손 떼 묻은 비학(碑學)의 장서에서 본질에 대한 초월성을 희구하는 작가의 지속적 물음과 맥(脈)을 같이 한다.
“최명영은 회화를 가능한 한 심적·감각적·신체적인 순수총합으로 변용시켰다. 이것이 한국의 모노크롬파 화가들의 공통된 욕망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그 안에서는 최명영이 가장 순수하고 철저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 시도에 있어서 가장 금욕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엄격한 수행에 몰입한 승려와도 같다.9)”
[글=권동철 미술전문기자·전문위원, 3월3일 2026 인사이트코리아]
[참고문헌]
1)기술적 복제시대의 예술작품(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지음, 심철민 옮김, 도서출판b.
2)퇴계 평전, 금장태 지음, 지식과 교양.
3)김복영 미술평론가-본질적 환원의 피안(彼岸) 중, 최명영 작가의 말, 1981.
4)동일성과 차이(Identität und Differenz), 파르메니데스의 명제,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지음, 신상희 옮김, 임보라 감수, 민음사.
5)지각의 현상학(Phénoménologie de la perception),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ty)지음, 주성호 옮김, 세창출판사.
6)이일 미술평론가, 還元的 置換의 世界, 1976.
7)일반 기호학 이론(A Theory of Semiotics),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지음, 김운찬 옮김, 열린책들.
8)최명영 작가, 흔적들의 시간성-나의 단색화와 변관식, 박수근, 2025.
9)치바 시게오(千葉成夫) 미술평론가, ‘마음·감각·신체’의 공간: 최명영의 회화,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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