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서평] ‘비평가 이일과 1970년대 AG그룹’ 발간 [Lee Yil,李逸,이일 미술비평가,이일 미술평론가,갤러리 스페이스21,오광수,서승원,박석원,심문섭,이강소,최명영,김구림]
(왼쪽)미술평론가 이일 (오른쪽)표지. 자료제공=스페이스21
지난해 2023년 5월10~6월24일까지 ‘갤러리 스페이스21’에서 열린 ‘비평가 이일과 1970년대 AG 그룹’전시의 일환으로 동명(同名)의 도서가 발간됐다.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인 1970년대 젊은 평론가와 작가들이 열정적으로 미술운동을 해 나갔던 시대를 관통한다.
책의 구성은 △1960~90년대 한국미술계에 미술비평(미술평론)개념을 인식시키고 한국현대미술의 방향성에 초석을 다진 미술비평가 이일(Lee Yil,李逸,1932~1997)의 6편(篇) 글모음 △오광수, 서승원, 심문섭, 이강소, 최명영, 김구림 등 AG(한국아방가르드협회)그룹 작가인터뷰 △정연심 에세이 ‘AG(Avant-Garde)그룹의 실험미술 전시’ 등이다.
‘갤러리 스페이스21’ 이유진(유족, 딸)대표는 ‘비평가 이일과 1970년대 AG 그룹’ 전시 및 출간의미 배경을 밝히고 있다. “풍요롭지 않은 시대에 젊은 작가들이 모여 시대의 모순과 억압을 표출하며 전위 미술을 펼쳤던 1970년대 실험 정신은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재조명해야 하는 중요 연구 과제입니다. 이 실험정신은 예술가라면 응당 갖춰야 할 자질이며 그 작가 정신을 이번 전시에 조명해 보고자 했습니다.”
프랑스 비평가 Laurence Pestelli 초청 강연회에서 통역, 1978. 자료제공=스페이스21 |
◇미술평론가 이일-6편(篇) 글 (부분발췌)
전위미술론-그 변혁의 양상과 한계에 대한 시론
사실인즉 예술이 새로운 사회구조와 이에 적응되는 기본적 정신구조의 가장 합당한 표현일 때 그 예술은 새로운 언어의 창조하는 모든 ‘산 예술’로서 공통된 기본과제를 추구하며 그 과제인즉슨 모든 형태의 전위의 본질을 규정짓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오늘의 참된 미술은 그것이 전위적인 성격을 띤 것이기에 참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참된 미술이기에 그것은 전위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전환의 윤리-오늘의 미술이 서 있는 곳
만일 60년대 미국에 있어서의 팝아트가 미국의 시대적 이념의 반영이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렇다고 그 팝아트가 동시에 같은 시대의 우리나라의 양식일 수는 없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 또 우리가 분명히 파악해야 하는 사실은 팝아트라고 하는 미술의 어떤 양식의 아니라, 미국이라는 현대문명과 팝아트라는 양식의 ‘만남’의 필연성인 것이다.
확장과 환원의 역학-70년 AG전에 붙여
다시 말하거니와 예술은 가장 근원적이며 단일적인 상태로 수렴하면서 동시에 과학문명의 복잡다기한 세포 속에 침투하며, 또는 생경한 물질로 치환되며, 또는 순수한 관념 속에서 무상(無償)의 행위로 확장된다.
공간역학에서 시간역학으로-니콜라 셰페르의 경우
예술작품에 있어서의 ‘움직임’은 우선 하나의 테마로 출발했었다. 그리고 연이어 그러한 테마로서의 움직임이 또 다른 요소들 속에서 차츰 강조 되었으며 그것을 촉진한 것이 바로 추상이었다.
현실과 실현
그리하여 인간이 세계에 대해 움직이면, 이에 대응하여 세계는 그의 면모를 달리하리라. 세계가 인간에게 작용해 오면 인간은 다시 자신과 세계와의 사이에 태어난 새로운 관계를 발견하리라. 그리고 이 발견, 그것은 곧 새로운 현실에 눈뜬다는 것이며, 그 현실의 실체와 구조의 탐구, 그 실현이 또한 오늘의 미술의 과제라 할 것이다.
탈 관념의 세계
그리하여 생은 항상 새로운 형태를 창조한다. 예술도 또한 그것이 자체 내에 생명을
잉태한 것이라면 관념의 테두리를 뛰어넘는다. 그것은 관념을 극복하며 탈 관념의 세계, 즉 구체적이요 직접적인 지각대상으로서의 세계를 지향한다.
갤러리 스페이스21 전시전경. 자료제공=스페이스21 |
◇정연심-‘AG(Avant-Garde)그룹의 실험미술 전시’ (부분발췌)
AG 그룹은 협회의 성격을 띠었지만 비평가와 미술가들이 주축이 되어 미술전문 출판물을 총4회 발간하고 전시를 총4회 개최했으며, 1974년에는 ‘서울 비엔날레’를 조직한 뒤 해체한 그룹이다. AG는 미술비평과 전시담론이 드물던 시기에 “전위 예술에의 강한 의식을 전제로 비전 빈곤의 한국 화단에 새로운 조형질서를 모색 창조해 한국미술문화발전에 기여 한다.”고 선언했고 이러한 모토는 저널과 전시 내용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한국아방가르드협회발행 ‘AG 1~4호’표지. 자료제공=스페이스21 |
AG 발행은 미술평론가였던 이일, 오광수, 김인환이 주축이었고, AG전에서 참여 작가들은 개별 작품과 ‘방법론’을 통해 새로운 물성과 재료를 실험했을 뿐 아니라 변화하는 도시환경과 사회를 포괄하는 새로운 참여미술을 추구했다. AG에는 당시 대지미술 및 개념미술과 같은 서양 현대미술을 비롯해 ‘아키그램(Archigram)’같은 영국의 실험건축 등 서구 동시대 동향들이 소개되었다. 프랑스와 미국 현대미술의 주요 비평적 담론이 다루어지기도 했다. 이우환의 ‘만남(해후)의 현상학 서설: 새로운 예술관의 준비를 위하여’도 AG에 게재되어 당시 젊은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70~1972년 ‘AG’ 전시도록표지. 자료제공=스페이스21 |
AG 제1권은 1969년, 제2권 3권은 70년에, 제4권은 71년에 발행되었다. AG전은 1970년, 71년, 72년에 크게 개최되었지만 마지막 전시는 75년에 총 네 작가만 참여한 채 마무리 되었다. 1973년에는 출판물 발행과 전시개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들은 ‘서울 비엔날레’개최를 통해 새로운 전시를 주도하려 했지만 제1회 ‘서울 비엔날레’가 개최된 후 AG 그룹은 사라졌다.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서승원, 심문섭, 이강소, 최명영
인터뷰 영상사진. 자료제공=스페이스21
◇AG 그룹 작가 인터뷰-오광수, 서승원, 심문섭, 이강소, 최명영, 김구림 (부분발췌)
오광수
1967년 ‘청년작가 연립전’(무동인, 오리진, 신전 동인)이 끝나고 한동안 그 여진이 이어졌습니다. 여기 참여했던 몇몇 작가들이 전국단위로 현대미술에 대한 강연회를 가졌는데 대구, 부산에서의 강연회에는 나도 동참했습니다. 주로 국제적인 미술동향과 이에 대응하는 젊은 세대 한국작가들의 활동을 소개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마도 이 같은 변혁기에 대한 절실한 의식이 자연스레 새로운 결속체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AG 그룹 초기멤버로 무동인이었던 최붕현, 이태현이 참여했습니다. 곧이어 탈퇴한 일이 있었고 첫 전시에는 곽훈, 김구림, 김차섭, 김한, 박석원, 박종배, 서승원, 이승조, 최명영, 하종현, 오광수, 이일이 참여했습니다. 이후 곽훈이 빠지고 신학철, 이승택, 김인환이 영입되었습니다. 3회 전시부터는 김동규, 김청정, 이강소, 송번수, 이건용, 조성묵이 합류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서승원
AG, 즉 아방가르드운동은 우리가 현대미술이라는 걸 이해 못 했을 때, 현대라는 글자를 쓸 수도 없었을 때, 또 과거의 미술에 젖어 있던 때, 또는 과거의 의식에 집착했던 때, 그것을 이해하려는 시도도 안 하던 때, 우리 위 세대가 앵포르멜을 통해서 저항적인 미술을 할 때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끌었던 아방가르드운동은 그것을 뛰어넘는 실험적이고, 도전적이고, 한국현대미술사에서 여태껏 없던 미술의 르네상스라고 저는 평가하고 있습니다.
심문섭
AG 활동 이후에 AG의 여러 가지 기운이 확산되었다고 그럴까. 작가들도 많은 자극을 서로 받고, 그러면서 ‘에꼴 드 서울’이 만들어졌고 ‘서울현대미술제’, ‘대구현대미술제’가 만들어졌고, 부산에서도 ‘현대미술제’가 만들어졌어요. 전국적으로 동시에 작가들이 그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많은 작가들이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지요. AG라는 독특한 작가들이 이제는 그 소임을 다하고, 각자의 길로 갈수밖에 없었어요, 어떤 사람은 ‘서울현대미술제’로 같이하고, ‘에꼴 드 서울’도 같이하고, 뭐 이런 식으로 나뉘어졌죠. 그러한 하나의 군집이 되는 그런 미술운동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 지금 우리 현대미술의 상당한 토대가 되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강소
그 당시에 어려웠던 학맥 간에 교류, 그러니까 홍대나 서울대생들의 교류가 가능했고요. 그 다음에 멤버들이 좀 진취적인 사고와 자부심을 갖고 또 모범적인 작업을 보여줬고, 거대한 작업들을 발표하고 그랬죠. 그리고 AG전의 타이틀이 ‘현실과 실현’이라든지 ‘확장과 환원’이로 붙었는데, 이런 제목은 아마 이일 교수님이 기획했을 거예요. 그러한 언어들은 당시 세계적인 어떤 학문에 서로 통용되고 있던 첨단적인 사고였습니다.
최명영
비평가들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했죠. 사실 70년대 초반까지도 우리에게 작가는 있어도 비평 분야는 아직 일반화되지 않았다고 봐요. 그때 이일 교수를 비롯해서 이제 오광수 씨 또 김인환 씨 이런 분들이 본격적으로 평론에 관심을 두고 작가들과 대화하는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그분들이 생각하는 작가의 작업의 실제 이런 것들이 굉장히 긴밀하게 교류됐어요. 또 그분들은 글을 통해서도 소통했기 때문에 그 역할이 상당히 중요했죠.
김구림
어느 날 파리에서 편지가 하나 도착했어요. 그런데 불어라 내가 알 수가 있어야지. 그걸 들고 이일 선생을 찾아갔더니 이 형이 파리의 화랑에서 온 편지라면서 굉장한 것이라고 했어요. 세계 비디오 작가 7인전을 하는데 동양 사람은 나만 선정했다면서 출품을 요청하는 내용이라고 했어요. 이일 선생이 당시 날 칭찬하면서 어떻게 이런 데 뽑혔지 했어요. 작품을 내야 되니까 이일 선생에게 편지 쓰는 걸 부탁했어요. 그렇게 이일 선생 도움으로 편지에 작품해설을 번역해 프랑스로 보낸 적이 있어요.
[비평가 이일과 1970년대 AG그룹, 서울문화재단 서울특별시 ㈜동덕 후원, 246쪽, 3만5000원, 안그라픽스 1월31일 2024년 刊]
[글=권동철, 2월16일 2024, 인사이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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