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동철의 한국현대미술脈-理氣와 추사 김정희:작가篇] 단색화가 최명영①‥한국적정신화의 품격 그 혼(魂)의 흔적[Choi Myoung Young,최명영 작가,최명영 화백,Dansaekhwa:Korean Monochrome Painting.]

 

작업을 준비하고 있는 최명영 화백. 사진=권동철.(2025.11) 


그 강의 삶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점점 더 나 자신의 삶과 닮은 것처럼 여겨졌다. 폭포 위의 강, 폭포 자체가 맞이하는 파국, 폭포 아래의 강,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거대한 바다로 흘러드는 것까지.1) 

한국단색화가 최명영(1941~)회화로서 숙명적인 평면을 궁극의 상태에서 어떻게 회화화 할 것인가?’하는 본질적 물음을 일생동안 밀어붙이고 있다. 이 의사(意思)의 명제는 평면조건이다. 

6.25전쟁 때 고향 황해도해주에서 남하할 때 목격한 죽음들을 본 충격은 성장기에 깊게 각인되었다. “절대적 기원이 없는 발생은 없는데, 이 기원은 존재론적으로 혹은 시간적으로 최초성(Originarité)이고 가치론적으로 독창성(Origialité)이다. 모든 발생적 산출은 자신이 아닌 것을 향한 초월성에 의해 나타나고 의미를 취한다.2)” 이 관점에서, 절망적공포가 최명영 단색화 의식의 발아지점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는 인천사범학교에 진학하여 정상화(鄭相和,1932~)선생을 만나 그림을 시작하게 된다. “당시 나는 뭔가 확실한 것을 하고 싶었다. 그림도 붓끝으로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살을 대고 비비적거리고 싶고, 물감 속에 푹 빠졌다나온 것 같이 온몸으로 하고 싶어 했다.3)”

 

등식(Sign of Equality 76-42), 83×100Oil on Canvas, 1976. 사진=이원홍.


19604.19혁명이라는 변혁의 소용돌이를 지나오면서 61년 대학2학년이던 최명영은 회화의 대상묘사가 갖는 2차원현상에 대해 자문(自問)한다. 63년 오리진(Origin) 창립전()(,Satori)’명제를 출품함으로써 평면화의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내게 된다. 

69년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창립논리의 연장선에서 환원의식, ()이미지경향, 오브제작업 등 물적 체험의 평면적용과 더불어 다양한 시도를 전개했다. 이후 1976년 서울화랑에서 평면조건(Conditional Planes,平面條件)’제하의 첫 개인전을 열었다. 

70년대 중·후반 로울러(roller)의 반복도포에 의한 단색조화면구축과 확장은 평면이 자신의 생명력을 갖도록 한 방법론이다. “(...)화면을 단색으로 평평하게 칠한다는 방법으로 했을 때 그가 직감적으로 이해한 것은 그 행위가 반복적이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자연은 매년 같아보여도 실은 지속적으로 다르게 반복되어간다. 그는 이점에 주목한다.4)” 


최명영 화백의 손 떼 묻은 작업도구. 사진=권동철.(2025.11) 


장구한 시간의 허() , ,

한편 1970년대 후반부터 한지 배면에 천공(穿孔)으로 물성을 반복해 꽂는 이른바 송곳작업을 선보인다. 질료의 침투와 돌기의 촉각성은 우주가 내 안으로 자리하게 하고 불멸(不滅)의 모호한 실마리처럼 무량한 서사(書寫)를 깨운다. 

평면 비슷한 평면의 미니멀(Minimal)은 봄날 라일락향기로 를 이끌고 낙엽 숲에 다정하게 내려앉는 밤하늘 별무리와 유대(紐帶)하여 존재를 확장시킨다. “괴테의 말을 빌리면, 정신의 이러한 역동성과 끊임없는 운동 속에서 모든 봄(Schau)이 곧 고찰되는 것이고, 모든 고찰이 곧 성찰하는 것이 되며, 모든 성찰이 결합으로 이행한다.5)” 

80년대 중·후반부터 질료가 집적되는 층위의 심연에서 우러나는 수직날줄의 역사성, 수평씨줄의 현재성은 한 가문의 경()을 지닌 듯 브러시스트로크(Brush Stroke)를 우려낸다. 5천 년 사계의 풍토성에 스민 전통은 회화적 리얼리티에 관한 통찰의 물음을 키우고 그것은 성리(性理)라는 정체성으로 표출된다. 바로 우주와 가 감각하는 균형의 복원으로 이기론(理氣論)의 마음가짐을 자라나게 하는 것이다.


최명명 화백의 서재. “부친께서 집안 가품(家品)의 상징으로 소중하게 여기시던 추사 김정희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의 본뜬 작품이다. 족히 70여년 세월을 가풍(家風)과 함께해 오고 있다.”라고 밝혔다. 사진=권동철.(2020.10)


2014년 이후 그리드(Grid)문양 방안지의 단위면적 위에 손가락으로 질료를 연속하여 메꾸거나 2015년부터 지문(指紋)의 반복 작업을 지향하고 있다. 마치 세워져 있는 비석(碑石)을 평면으로 변환한 듯, 이 운동성은 생멸의 얽매임을 초월한 무위(無爲)의 혼()이 간직한 영원성으로 작용한다. 

“()대개 품격(品格)의 높낮음은 적()에 있지 않고 뜻에 있는 것이다. 그 뜻을 아는 자는 비록 청록·니금(泥金)이라도 역시 좋으며 서도도 역시 그러하다.6)” 

이윽고 소지(素地)가 드러내는 본질은 고도(古都)의 금석문이 간직한 생생한 맥박처럼 대기의 촉각, 한반도 터 기운이 배어나는 은근하고 도저한 흙내음의 현대미(Contemporary)를 수렴한다. 그리하여 최명영 60년이 넘은 화업(畵業) ‘평면조건은 가장 한국적정신화의 담박한 자부심으로 현존(現存)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엔 정답이 없지 않은가. 다만 그 끊임없이 모색한 흔적이 있을 뿐으로 그 흔적이 답이고 작품이다. 그 흔적은 그 예술가가 살고 간 시대의 답이라 할 수 있다. 그 예술가가 살아 낸 흔적이다!7)”


[참고문헌]

1)패터슨(PATERSON),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William Carlos Williams)지음, 황유원 옮김, 읻다.

2)후설 철학에서 발생의 문제,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지음, 심재원·신호재 옮김, 그린비.

3)김복영 미술평론가, 최명영-본질적 환원의 피안(彼岸), 1981.

4)치바 시게오 미술평론가(千葉成夫 美術評論家), 마음감각신체의 공간:최명영의 회화(感覚身体空間:崔明永絵画), 2015.

5)상징형식의 철학-3권 인식의 현상학(Philosophie der Symbolischen Formen, Dritter Teil: Phänomenologie der Erkenntnis), 에른스트 카시러(Ernst Cassirer)지음, 박찬국 옮김, 아카넷.

6)완당전집 제6권 제발(題跋), 조희룡의 화련에 제하다(題趙熙龍畫聯), 한국고전번역원 신호열 , 1988.

7)최명영(崔明永,Choi Myoung Young)작가, 예술가와 흔적, 2025.

 

[=권동철 미술전문기자·전문위원/인사이트코리아 12.2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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