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제이영‥유희의 투영 마찰과 흔적의 실루엣[안동도산서원,퇴계 이황,Yi Hwang,李滉,성리학,제이영 작가,J Young,安東陶山書院,Dosanseowon Confucian Academy-Andong,경북예천출신화가,제이영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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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구불한 산허리 아래를 감도는 강물을 바라보며 간간히 불어오는 입추(立秋)의 바람에 더위를 식히며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안동도산서원(安東陶山書院,Dosanseowon Confucian Academy-Andong)’을 찾았다. 퇴계(退溪) 이황(Yi Hwang,李滉,1502~1571)선생을 비롯한 스승과 제자가 함께 모여 학문을 강론하던 전교당(典敎堂)에서 성리학적 고고한 정신성의 묵향수행에 겸허한 자세로 심취(心醉)하고 있는 제이영(J Young,정재영) 작가. “경북예천에서 자란 나는 유년시절 부모님과 도산서원을 여러 차례 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곳에 오면 언제나 내 작업의 기운을 받는다.”라고 말했다. 사진=권동철.
“둘에 둘은 넷 넷에 넷은 여덟 여덟에 여덟은 열여섯……다시 해봐! 하고 선생님은 말한다…그러나 아니 저기 하늘에 지나가는 종달새 한 마리….1)”
화면은 다분히 기억에서 촉발 된 어떤 흐름으로 인도한다. 겹의 따스한 부피감은 유년의 순수시대로 초대하고 흙과 돌, 강둑 퇴적된 모래벽에 박힌 물질의 파편들이 노을빛에 번뜩인다. “상상한다(imaginer)는 것은‥의심의 여지없이 기억이 현실화된다는 한에서 이미지 속에서 ‘살고자하는 경향’이 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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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ke-150mm, 230×165㎝ Mixed media on canvas, 2025.
비의 기억이 대지를 적신다. 몸(體)을 감도는 어떤 체취의 감각이 물방울처럼 튕겨 오르고 맨발로 땅을 밟으며 걸어가는 촉각에 일상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폴 엘뤼아르(Paul Éluard)의 형이상학적 이행 시(詩)에 대해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꿈을 간직했던가. 재여, 돌을 닦아라. 돌은 근면한 손가락을 닦는다.3)” 비와 습기 그리고 흐린 날에는 더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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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ke-150mm, 74×54㎝, 2025.
◇중심점으로 되돌아가는 길
마치 먼 수평선 바람이 손끝으로 다가오는, 찰나의 필획(筆劃)이 지나가며 번진 깊은 신음처럼 화면은 새로운 낯섦을 매개로 자아의 형상과 충돌하며 무의식의 페이지를 벗긴다. 오브제 숯은 뿌려지고 그어져 질료로써 형상을 더욱 도드라지게 비춘다.
무의식의 투사(投射), 그 기억의 가녀린 실루엣 “신체는 혼연한 자아(Self through Confusion)가 느껴진 것(the sensed)속에 내재되어 있는 자아이다. 그러므로 신체는 사물 속에 갇혀진 자아요, 따라서 앞과 뒤를 가지며 과거와 미래를 지니고 있는 자아이다.4)”
그럼으로써 ‘내 몸’과 조우한, “내가 따라온 모든 길, 내가 취한 모든 발걸음이 하나의 점, 즉 중심점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것은 모든 길의 표현이다. 그것은 중심을 향한 길, 개성화를 향한 길5)”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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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ke-150mm, 163×115㎝ Mixed media on canvas, 2025.
◇理와 氣, 본질로의 어울림
대지는 따뜻하고 꿋꿋하다. 무엇보다 그것의 내밀한 순환성과 맞물리는 인과는 마침내 생동을 일으킨다. 불순의 부조리를 정화하여 잉태하는 파동(波動)은 그 힘의 산물이다. 이를테면 어떤 리듬의, 직관작용과 세심한 기하학을, ‘나’의 기억이 신기루 같은 그러면서도 무심한 일상에 동행하는 또 유희와 도저한 생명성의 회귀를 껴안은 너그러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람의 마음은 비어 있으면서 ‘이(理)’이다. 영활하여 ‘기(氣)’이다. 이와 기의 집이 된다. 그러므로 그 이는 곧 사덕의 이로 오상이 되고, 그 기는 음양오행의 기로 기질이 된다. 사람의 마음이 갖추고 있는 것은 모두 하늘에 근본 한 것이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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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ke-150mm, 74×54㎝, 2025. |
[참고문헌]
1)절망이 벤치에 앉아 있다, 자크 프레베르(Jacques Prévert) 시, 김화영 옮김, 민음사.
2)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지음, 이명곤 옮김, 세창출판사.
3)대지와 의지의 몽상, 가스통 바슐라르(G. Bachelard), 민희식 옮김, 삼성출판사.
4)현상학과 예술,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지음, 오병남 옮김, 서광사.
5)칼 융(C.G.JUNG)의 회상-꿈 그리고 사상, 아니엘라 야회 엮음, 이부영 옮김, 집문당.
6)이황-조선유학의 분수령, 이봉규 편저, 창비.
[글=권동철, 8월9일 2025. 인사이트코리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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