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동철의 화가탐방]화가 조향숙⑥‥한민자 석도륜(寒眠子 昔度輪),논객 석도륜,대구 봉성갤러리 개인전,1995년,뢰차,조향숙 작가,Jo Hyang Sook[공산예원 이남석(李南石)]
석도륜 作=貞藪只自徐(정수지자서), 137×137㎝.
“뢰차 동인들이 대구 봉성갤러리에서 열린 석도륜 선생 전시장에 함께 갔었다. 오픈 초대일 이었는데 특이한 것은 작품 옆에 각기 다른 이름들이 붙어 있었다. ‘선생님 작품인데 이게 뭐지?’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오픈하기 전 판매완료 된 작품구매자들의 이름이었다.1)”
寒眠子 昔度輪-달구벌 사람들과의 만남展
글=이남석(李南石)
寒眠子 昔度輪은 1947년 겨울 伽倻山 海印寺 白蓮巖 禪院으로 들어갔었다. 諸方禪院을 거쳐 1958년 山中생활에서 떠난다. 釜山日報, 自由民報, 民主新報 등에서 校正 編輯 論說記者 등을 경험하였다.
석도륜 作=(왼쪽)82×49㎝ (오른쪽)126×66㎝ |
1960년 4·19 이후 서울로 移住 신문 잡지 등에 自由寄稿家로 生計, 1961년 5·16이후 東亞日報社로 모 종교단체가 데모차 모여 들었을 때 ‘邪敎와 社會性’, ‘非西洋宗敎의 本質’이란 文化批評을, 1963년부터 英字紙 코리아저널(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기관지)에 미술 및 禪思想硏究論文을 연재하면서 1964년 한국 禪宗의 始源·九山門巡禮記를 5개월간 싣고 1965년 주한국 외국인 학자 및 학생들의 요청으로 한국 近代禪匠 다시 3개월간 썼다.
석도륜 作=(왼쪽)68×67㎝ (오른쪽)68×67㎝ |
1965년 봄 학기부터 수도여자사범대학, 성신여자사범대학에서 미술론, 미학, 미술사, 미술감상 등을 講座하면서 이후 慶熙大 師大, 梨大, 淑大, 延世大(大學院)등등 要請따라 講座를 맡았다. 한편 書, 畵, 篆刻, 版畵, 板刻, 揚本일 을 손에서 떼지 않았다.
석도륜 作=60×45㎝. |
1964년 여름 카나다 몬트리올 Eaton화랑에서 초청 개인전, 1969년 가을 일본 大阪船場三彩工藝店에서 초청개인전, 1971년 여름 일본 東京 丸ノ內工業俱樂部에서 초청전을 갖었었다. 1987년 서울 신세계 미술관의 기획으로 초청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석도륜 作=(위)204×34㎝ (아래)135×34㎝. |
1983년 봄학기부터 W. Germany–Kassel 西獨 캇셀 대학교 예술대학에 招聘교수로 渡獨, 1984년 봄 Berlin Galerie-Ruth Schmidt 베를린 루트·슈미트 화랑(畵商)과 계약을 맺고 아울러 초청작품전을 갖었다.
스위스에서 발간되는 봐르트·쿤스트誌에 일면(一面) 소개된 바 있다. 16개 국어로 번역 소개되는 책이다. 이밖에 1993년 겨울 오스나 부르크·쿤스트하레에서 초청전, 심포지움 및 바잘이 있었다. 서울의 寒眠子 居處를 마련해 주고 학문과 書畵硏究에만 生涯를 걸고 몰두하는 諸(弟)子들의 모임으로 뢰차동인회가 있다.
석도륜 作=(위 왼쪽부터 시계방향)논객 석도륜,전시도록표지, 내지 전시정보, 도록뒷면 석도륜 낙관(落款). |
以上이 寒眠子 昔度輪의 개략적 경력인데 나 공산 이남석(空山 李南石)이가 그를 만난지는 어언 35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그와 나는 시대는 달랐지마는 伽倻山 白蓮庵을 두고 또 退翁스님을 두고 奇妙한 인연으로 맺어지는 느낌이 없지 않다.
어느 날 나는 문득 그를 불러서 초청展示會를 가졌으면 하는 생각에 한 30여점의 작품을 가지고 來丘해 줄 것을 요청했었다. 이번 전시회가 전적으로 나의 恣意的 作爲에서 이뤄졌음을 闡明하는 동시에 일의 化作大尾는 商山의 배암처럼 結果 奇特했으면 하고 바란다.
[참고문헌]
1)대담=권동철, 조향숙 작가 작업실, 2024. 5.
2)△글=1995년 시월 하순께서 空山藝院에서 李南石. △출처=寒眠子 昔度輪-달구벌 사람들과의 만남展, 봉성갤러리, 1995. △도록제공=조향숙. 도록에 수록된 작품촬영=권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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