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동철의 화가탐방]화가 조향숙④‥불교미술과 조상(造像)[뢰차(Roe Cha),불교미술,서급(西汲)조향숙,조향숙 작가,Jo Hyang Sook,논객 석도륜(昔度輪)]
조향숙 작=뢰차, 상판 위 판각, 1998. 사진=권동철.
“스승 석도륜은 뢰차(Roe Cha) 회원들에게 풀 섶 돌무더기에 자라나는 풀같이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최고라고 말씀했다. 명예를 탐하는 곳에는 기웃거리지 말고 너희 자신들이 최고라는 것을 깨달으라고 가르쳤다.1)”
기독교 미술이라고 하기 보다는 성화(聖畫)라고 하듯이, 불교미술이기 보다는 ‘조상(造像)’이라야 옳다. 독일의 유물적인 명구로서 불화를 ‘불교문화재’로 부르면서 그 누구도 이의를 느끼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홑으로, ‘불교문화재’ 그것으로 끝내버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그 이상인 것이다.
서양에서 제 4세기 경 로마의 효교가인 락텐듀스가 라틴어의 릴리전(宗敎)을 정의하기를 ‘종교란 신(神)과 사람(人)과의 인격적 관계이다’라고 했듯이, 서양의 종교는 반드시 종교적 객관인 신과 종교적 주관인 인간의 영혼이 있어야 한다고 믿어져 왔다. 그렇다면 불교도 과연 그러한가. 불교에 있어서는 어떠한 신도 인간의 개아적(個我的)인 영혼의 불멸설도 세우고 있지 않다.
조향숙 작=뢰차, 반절 순지 먹, 2009. |
원시불교에 있어서 불타(釋迦)는 신의 존재를 단호히 부정하는 바 있었다. 불교에 있어서는 종교유의 객관인 신도 종교의 주관인 영혼도 인정치 않는다. 불교가 생겨나기 전에 이미 인도를 정복하고 모헨조다로의 문명유적을 헐어뜨려버린, 그리고 카스트에 의한 통치를 하였던 아리안족의 신(神) 브라흐만(婆羅門) 같은 존재를 불타는 ‘진정한 삶을 구현하려는 사람에 있어서 신이란 거대한 방해물이 될 뿐’이라고 했다.
아마 이같은 말은 근세의 ‘타고르’도 한 바 있다. 그래서 서양의 종교학자 및 철학자들 사이에는 불교가 끝내 종교가 될 수 없다는 주장들이 쉴새없이 일고 있는 것이다 기껏해야 유현(幽玄)스러운 동양의 철학적 일파 아니면 인도사상 가운데서 ‘힌두’교나 ‘쟈이나’교와 같은 유사한 일종의 윤리(倫理)운동 쯤으로 알려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면 불교미술의 움과 싹이 과연 불교의 어디쯤에서 트이게 된 것인가. 본디 원시불교에 있어서 불타 자신은 자기가 신앙의 대상이 된 적이 없었을 뿐 아니라 그 자신이 말하기를, ‘그 누구를 신앙한다고 해서 삶의 의미가 밝혀지고 죄를 멸하고 맑(淨)게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 바 있다.
(왼쪽)조향숙 작=뢰차, 순지 먹, 1992. (오른쪽)조향숙 작=전지, 순지 위 먹, 2003. |
그런데 서양의 이른바 권위 있는 종교가 및 종교철학자들이 불교가 종교가 아니라고 할 때마다 ‘아미타불’이라든가 ‘관세음보살’이라든가 하는 관념 및 제불 제천(諸佛 諸天)의 조상(造像)을 내세워 그것이 마치 신앙의 대상인 양 인식을 그릇되게 하는 경우가 왕왕 있어왔다.
이미 앞에서 든 바와 같이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유물 유적’ 곧 불교문화재로 일관해서 명칭을 붙여 마치 불교미술이 지난 과거의 퇴적물적 직접체로 취급되고 있기는 하지만은, 불교는 그것이 싫고 좋고 간에 어느 집단이나 오늘 개인(專門學者)의 관념의 것이 아닌, 흙과 바람 속에 머물어 숨 쉬는 숨통으로, 산채로 우리 개개인의 면전을 출입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예부터 종교심이 투쟁심과 딴판인 것은 아니다. 한(漢), 위(魏), 진(晉) 및 수(隨), 당(唐)과 고구려의 전쟁, 신라와 당나라와의 투쟁 그리고 고려와 원(元) 명(明)과의 항쟁, 이같이 전쟁이 우리 자신과 쉴새 없이 연관되듯이 불교는 아직도 우리 곁을 영영 떠나지 않고 있다. 때문에 불교 미술을 이해하려면 ‘문화재적’차원이나 예술작품의 감상차원에 앞서 우선 이와 같은 기초지식이 없이는 어떤 인식적, 종교학 오류를 범하게 된다.
조향숙 작=뢰차, 반절 순지 먹, 2006. |
법망경(梵網經),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대지도론(大智度論), 무량수의경(無量壽義經) 등 도상(圖像)학적 분류를 논한 조불경(造佛經) 같은 따위가 있어서 불교미술의 원리가 형성된 것처럼 논의되어지기도 하지만, 실은 원시불교이전에 이미 인도 고래(古來)의 마하프르샤(出世間의 大丈夫)의 대장부와 같은 초자연적 인격자가 구비한다는 32개의 조형적 기본 정형과 80종류의 세부적 표현양식이 벌써 전해져 오고 있었다.
그런데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3세기 사이에 중, 남부 인도 곧 오늘날의 남방(小乘) 불교의 미술 문화가 찬란하게 일어나만은, 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가 이끈 ‘그리스’군대의 침공에 의한 인도 서북변경의 그리스-간다라양식의 조상(造像)이 탄생(서기1C~5C)하기까지 원시불교에 있어서는 불타의 인격적 조상은 금기(禁忌)된 채 오랜 세월을 지내고 있었다.
이로써 흔히들 비(非) 서양의 종교들이 우상숭배로 인하여 혼란이 되어지고 있는 일들은 사실과 어긋남이 입증되는 바이다. ‘헬레니즘’의 장미(그리스문화) 빛을 보고 빙그레 ‘아르케잇스마일(古拙스러운 미소)을 머금은 유현(幽玄), 장엄한 자비의 조상을 탄생시켜주었던 그 미소는 오늘날에 있어서 피비린내 나는 투쟁을 일삼는 서방세계에 어떤 특이한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참고문헌]
1)대담=권동철, 조향숙 작가 작업실, 2024. 5.
2)△글=석도륜(昔度輪). 병인년(丙寅年) 4월 초팔일(初八日)일 즈음하여 서급(西汲)부처의 조상길일(造像吉日)에 써줌. △출처=조향숙 제1회 개인전, 5월15~20일 1986, 동방플라자미술관 전시도록에 수록. 자료제공=조향숙.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