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동철의 화가탐방]화가 조향숙②‥유(遊)의 세계[전각(篆刻) 석도륜,논객 석도륜(昔度輪),서급(西汲) 조향숙,조향숙 작가,Jo Hyang Sook]
“나의 명호(名號) ‘서급(西汲)’으로 지어주신 분이 석도륜 선생이다. 1986년 첫 개인전을 앞두고였다. 스승께서 “시방정토(十方淨土) 세계로 속히 다다르라”고 말씀하시면서 낙관(落款)을 제작해 주셨는데 현재까지 그 낙관을 쓰고 있다.1)”
조향숙 作=3분의 2절, 장지, 석채, 1985. |
하늘에는 바람의 속사정 흙속에는 물과 돌의 속사정 사람의 가슴속에는 사람마다의 신구의(身口意), 속사정이 있는 법. 1960년대에 면상인(面相認)하였던 여성제자 하나가 8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적극종사(積極從師)한다함은 또한 무엇을 뜻함인가.
물론 나에게는 대단한 고전도 없고 황금이나 석유도 없음은 말할 것도 없다. 고전적 지성도 역사적 자유도 못 지닌 채 있음이라고는 변증법적 통속의 미훈혼돈원시적(微醺混沌原始的) 주취(酒趣)로 거의 피곡장취(辟穀長酔)인 나에게서 배움이라고는 있을 까닭이 없다.
‘소크라테스’의 ‘케논’쪽이 아닌 ‘프라톤’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실체인 감성에 관한 아포리아(難問 혹은 矛盾性)을 지껄이고 있는 것뿐인 것이다. 밥걱정만 없다면 그다음은 이밥걱정이라고 일러온 말인즉 시집장가 들고 애기 낳고 납세의무 다한다는 그 말인 것인데 그렇게 해놓은 다음일은 신불(神佛)이나 지성이나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 흩으로 지식이라고 불리워지는 것과는 좀 다른 것에의 관심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쪽으로 해서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뿐이다.
조향숙 作=(왼쪽)전지, 장지, 석채 1985. (오른쪽)전지, 장지, 석채, 1985. |
칠종(七種)이 더 되는 허물과 백색(百色)의 고약(孤弱)을 지니면서 두보(杜甫)는 아니지만 꽃피면 허망(虛妄)을 새소리에 간(肝) 떨어지는 그러한 나의 성정(性情), 사람마다의 그 개인차-심천(深淺)있을망정 누구에게나 있는 의식세계의 그 안속의 제약에서 해방되어지고져 하는 그 일에 관해 더러는 지껄이고 있는 것.
이것은 예술가나 과학자 상공인이나 정치가나 모두가 공통의 의식이 아니가 하는데 다만 그러한 감각이나, 의식이 인(認)-지식과 같이 관련지워지는가 혹은, 행동기준으로 결부되느냐하는 것이 간택(揀擇)이란 것이다.
조향숙 作=반절, 장지, 석채, 1985. |
고전(禮經)에 장(藏). 수(修), 식(息), 유(遊)란 한난제(難題)거리가 있다. 장(藏)이란 만유 혹은 만유의 법칙, 수(修)란 자기적 수성(守成) 곧 취득(取得), 식(息)은 그친다는 글자인바 공부 끝냄 아닌 시대인식 곧 만유변전(萬有變轉)의 법칙을 이미 터득한자 곧 통속적인데서 흔히 설명 되어졌었던 정(正)-반(反)-합(合)을 자증자득(自證自得)함에 이르는 자는 언제까지나 수성(守成)에 머무름이 없이 ‘유(遊)’의 새로운 전개면으로 보기위해 마치 하나의 자유를 얻기 위해 하나의 자유를 버린다든가 제2의 인식세계에 이르렀음은 제1의 인식세계의 문이 닫혀 버린다든 그것과도 같다.
이를테면 ‘뭣으로부터’, ‘뭣과도 같다’는 역사가, 과학자의 사실 및 진실이란 자칫하면 눈으로 보여지는 것과 잡혀진 것 밖에는 말할 수 없게 되는 것이지만 ‘뭣인가 있는 것 같고, 뭔가 있을 수 있고, 뭔가 있어 주었으면 했던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있지 않다’고 하는 세계를 만들어냄 이것이 곧 ‘유(遊)’의 세계요 이 ‘유(遊)’의 세계는 단순한 감각과 상상력으로서만이 이뤄지는 그러한 세계는 아닌 것이다.
조향숙 作=(왼쪽)반절, 장지, 석채, 1985. (오른쪽)전지, 장지, 석채 ,1985. |
단순한 감각과 상상력으로서 ‘호모루덴스’의 세계가 이뤄진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범용(凡庸)한 고전학자이리라. 엉성한 역사와도 같은 한 가지 ‘수성(守成)’도 ‘끝냄=식(息)’도 터득하지 못한 범용한 사상작가인 것이다. 그것은 엄격한 규범학적인 규율(規律)에 있어서만이 한갓 제약을 풀고 진정한 자유의지를 갖게 되는 것이다.
대개 그렇지 못한 지식인들이란 선전가(宣傳家, 歷史)가 되었거나 고전 속에서 한없이 투명(透明)한 것 보다 더 짙은 자유의 원리를 배우지 못하고 남의 자유를 시기(猜忌)하는 정녕 자유를 모르는 고전학자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조향숙 作=전지, 장지, 석채, 1985. |
잘라 말해 나의 제자들은 이 엄격한 규범학적 규율을 소극적이나마 한껏 관심을 두고 있는 자들이며 수(守, 修) 성(成)하려 하고 있는 셈인 것이다. 위하여 고전에서부터 독화(讀畫)하고 고전으로부터 길(汲)어 올리고 있는 것이다. 서구의 ‘서(西)’자가 아닌 서성(西城)의 ‘서(西)’자를 가지고 구태여 이 ‘두 아이의 어미’인 조씨(趙氏, 조향숙)의 당호(堂號)를 ‘서급(西汲)’으로 붙인 소이(所以)이다.
[참고문헌]
1)대담=권동철, 조향숙 작가 작업실 인터뷰, 2024. 4.29
2)[글=석도륜(昔度輪). 병인년(丙寅年) 4월 초팔일(初八日)일 즈음하여 서급(西汲)부처의 조상길일(造像吉日)에] [출처=조향숙 제1회 개인전, 5월15~20일 1986, 동방플라자미술관 전시도록에 수록. 자료제공=조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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