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박석원‥분할과 확산 저 시공간의 몸짓 [PARK SUK WON]
積意(적의), 227.3×181.8㎝ 캔버스 위 색한지, 2021
“아름다움이란 마음의 상처 이외의 그 어디에서도 연유하지 않는다. 독특하고 저마다 다르며 감추어져 있기도 하고 때론 드러나 보이기도 하는 이 상처는, 누구나가 자기 속에 간직하여 감싸고 있다가 일시적이나마 뿌리 깊은 고독을 찾아 세상을 떠나고 싶을 때, 은신처처럼 찾아들게 되는 곳이다.1)”
박석원 평면작업은 어떤 한지특성의 물질감을 분할하여 변주한다. 수평수직의 접합을 통해 확산을 구현하고 전혀 예상치 못한 겹쳐진 화면 중간 자유롭게 분할된 형질들의 관계성을 다룬다. 흰색과 검은색이라는 강하고 밀도 있는 무게감의 양면성에 작위(作爲)를 개입함으로써 입체적 효과의 극대화와 깊이를 구사해내기도 한다.
積意(적의), 91×116.8㎝ 캔버스 위 색한지, 2017 |
“조각을 하다 보니 몸에 배어있는 덩어리에 대한 감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는 화백의 말처럼 한지라는 재질의 오브제를 연속된 공간으로 분화(分化)함으로써 덩어리로 있던 특성이 여러 개의 등분화구조로 드러나기도 한다. 개체의 상충관계를 통해 에너지의 행방을 모색하는 작업자의 감성이 나타나 흥미롭다.
그런가하면 절삭(切削)에서 나타는 무한한 몸짓의 변화라고 할까. 원론적인 드로잉에서 대비가 미묘하게 이어지는 선(線) 구조가 색한지에서 상당히 강도 있게 떠올라 관계의 인력(引力)을 배가시킨다.
“형이상학자가 선을 긋지 않는다면, 그는 사유하겠는가? 열려있음과 닫혀 있음은 그에게는 바로 사상들인 것이다. 열려 있음과 닫혀 있음은, 그가 모든 것에, 그 의학적 체계에까지도 결부시키는 메타포들이다.2)”
積意(적의), 181×181㎝ 캔버스 위 색한지, 2019 |
◇신성하고도 무량한 우주여!
오브재로서 한지가 박석원 조각에 개입된 것은 1970년대 중반쯤이다. 한지 자체의 종이도 있지만 원재료를 생산지에서 가져와 평면화 또는 입체소재의 한 부분에 속하는 시도를 했었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조각의 ‘적의(積意)’시리즈 등이 보여주는 반복적 개념을 종이라는 성격을 통해서 새롭게 시도해 나아가고 있다.
근작에서는 화면중앙이 열십자로 나누어진 시방세계(十方世界)의 신성하고도 무량한 자연계를 드러낸다. 거장 첼니스트 안너 빌스마(Anner Bylsma)연주, 바흐 무반주 첼로선율이 찰랑찰랑 물결치듯 무한으로 이어지는 숨결이 화면가득 운동성으로 넘실거린다.
積意(적의), 130×130㎝ 캔버스 위 색한지, 2019 |
박석원 화백은 이렇게 말했다. “조각에서도 단호하게 절반을 자른 분할에 대해 즐겁게 작업을 해 오고 있는데 평면에서도 동일하게 구사하고 싶었다. 큰 덩어리가 분화되어 오는 관계성은 또 다른 구조로서의 특성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처럼 물질과 정신계가 하나로 융화하는 물아일체의 시간과 공간성에 대한 통찰(洞察)로써의 확장은 궁극으로 “입체와 평면작업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작가 주장을 뒷받침하는 본바탕이기도 하다.
“‘본질이 하나’, ‘자성이 하나’, ‘본성이 하나’는 동의어이다. 기둥이 소지와 ‘본질이 하나’인 것은 기둥자체가 성립되는 것만으로 소지의 본질로 성립되기 때문이다.3)”
[참고문헌]
1)자코메티의 아틀리에(L’ATELIER D’ALBERTO GIACOMETTI), 장 주네(Jean Genet)지음, 윤정임 옮김, 열화당.
2)공간의 시학(La poétique de l'espace),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著, 곽광수 옮김, 동문선.
3)물질세계(The Physical World), 기획 및 서문-달라이 라마(His Holiness the Dalai Lama), 엮은이-게쎄 텐진 남카(Geshe Tenzin Namkha), 불광출판사.
[글=권동철, 인사이트코리아 12월호,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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