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택렬 탄생 100주년 기념전-③]한국적 원형 한국적 추상 모색 1950년대 중반~60년대 초[유택렬과 흑백다방 친구들,경남도립미술관,Yoo Tackyul,劉澤烈,유택렬 화백,유택렬 작가,권동철]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화가의 손(Painter’s Hand), 43.5×36.2캔버스에 유채, 1956, 개인소장. 2층 전시장 복도전경과 전시장 입구.(아래 맨 왼쪽벽면)돌멘(Dolmen), 171.1×124.3캔버스에 유채, 1963, 개인소장. 사진=권동철.


이것은 잔치가 아닙니다. 갈증이 심한 사람이 샘을 파다가 얻은 조상들의 유물과 또 유리병 조각 같은 것을 여러분들에게 보여드리자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샘물이 솟은 물줄기가 있을 것인지 봐주시오.<전시장에 붙여진 유택렬 글, 1950년 후반추정>”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무제, 25×43.9MDF에 유채, 1958, 개인소장. 가족(Family), 18×16oil on canvas 1957, 개인소장. (왼쪽부터) 작품(Work), 27.5×33oil on canvas, 1958, 개인소장. 지워지지 않는 흔적, 27×37.4패널에 유채, 1958, 개인소장. 작품M-4(Work M-4), 28.8×39oil on canvas, 1958, 개인소장. 전시전경. 사진=권동철.


유택렬이 진해에서 첫 개인전을 연 1957년은 한국현대미술이 발화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한국전쟁이 멈춘 당시, 한국미술계는 유럽과 일본을 통해 앵포르멜(Informel)과 추상표현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이전 화단을 주도하던 아카데미즘을 거부하고 현대적 양식으로 추상이 대두되었다. 

유택렬은 1961110일 진해에서 이경승과 결혼했다. 715일 아버지 유병추가 별세한다. 그해 103흑백다방에서 유택렬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생선, 79×64캔버스에 유채, 1960, 개인소장. 생선, 35×27.3합판에 유채, 1961, 개인소장. 전시전경. 사진=권동철.


이 시기 유택렬은 진해에서 국내외 도서와 잡지를 통해 서양미술의 흐름을 익히고, 홀로 실험하며 자신의 조형언어를 찾기 위해 끝없이 고민하고 노력하였다. 초기 그의 추상작업은 한국적 앵포르멜의 흐름에 유입되었다기보다는 전후(戰後) 황폐화된 이 땅과 자신의 운명에 투영한 실존적 입장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앵포르멜 형식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작품에서는 뭉개지고 흩어진 형태에서 기하학적 구성을 근간으로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려는 의지가 강하게 묻어나는 한편, ·후기 유택렬만의 조형언어로 구체화할 조짐을 엿볼 수 있다.<‘유택렬과 흑백다방 친구들전시도록, 경남도립미술관, 2024>”

 

(위 왼쪽)(Dragon), 90.8×116.6캔버스에 유채, 1961, 개인소장. (위 아래)Work 60-L, 97×162.2캔버스에 유채, 1960, 경남도립미술관 소장. (오른쪽)전시전경. 사진=권동철.


무속과 풍수 등 한국적 에너지

유택렬은 살(), (), 축제(祝祭) 작품들이 가진 보이지 않는 기운, 즉 삶과 죽음의 경계 혹은 그 공존의 에너지를 가시화한다. ()은 한국무속과 풍수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불행이나 재앙을 가져오는 궂은 기운을 의미하며,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이해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불행한 상태를 설명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유택렬은 샤머니즘의 본질을 이 살()로 보았다. 이는 인간에게 고통과 죽음을 동반한 두려움을 주는 살()의 기운, 즉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전쟁과 평화의 사이에서, 제사와 축제를 통해 모이고 풀리는 나쁜 에너지들이 바로 그것이다. 유택렬은 이 살()의 기운을 시각화하며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죽음의 기운을 둘러싼 두려움을 마주하고 극복하고자 했다.<유택렬과 흑백다방 친구들전시도록, 경남도립미술관, 2024>”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무제, 16×21합판 위 종이에 유채, 1956 개인소장. (), 46×60캔버스에 유채, 1962 경남도립미술관소장. 부적에서, 23×17.5합판에 유채, 1961 개인소장. 살경(煞景), 23×38합판에 유채, 1959, 개인소장. 사진=권동철.


우리조형의 본질 한국적 추상

유택렬은 우리 조형의 본질을 찾고, 자신만의 조형언어로 한국적 추상을 일구어 내기 위해 원시미술과 불교미술의 조형성을 연구했다. 1960년 한국적 추상을 모색하던 시기에 한국적 원형으로 단청의 조형적 요소를 차용한 작품을 60년대 초 실험하고, 우리나라의 북방식 고인돌을 소재로 한 돌멘(Dolmen)’작업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황원철 경남도립미술관장/경남도립미술관 유택렬 전시영상아카이브, 사진=권동철.

 

아내의 고미술품컬렉션과 유택렬 작품세계

나는 이 가야토기나 또 신라토기 연구를 한창 많이 하면서, 사모님이 주로 민예품, 토기, 도자기 같은 것을 많이 수집했는데, 사모님 덕택에 유택렬 화백은 민예품, 골동품 중에서 도자기, 항아리를 많이 좋아하고 또 사모님은 가야토기 신라토기를 많이 좋아했는데, 제가 토기 가야토기 백신이 낮고 회백색은 가야토기다 흑색은 신라토기다 그런 분류를 하면서, 유택렬 사모님하고도 그러한 토기, 공예 때문에 많이 드나들었는데, 그것이 유택렬 화백의 그림세계하고도 관련이 됩니다. 

왜냐하면 유택렬 화백의 작품에서 색동옷 같은 것도 있고, 단청이라든지 용이라든지 이런 그림들이 한국미에 대한 재현이랄까, 동방적이고 아시아적인 그런 한국미에 대한 것이 주술적인 종교의식에서 나오는 부적에서시리즈와 한국미가 결합되어 있는 그런 작품들로 많이 해 왔지 않습니까?<황원철>”

 

[=권동철, 12162024, 인사이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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