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고영훈‥정적에 떠오르는 저 허공의 불가해[제주출신화가 고영훈,高榮勳,Ko Young Hoon Painter,고영훈 작가,고영훈 화백,극사실화가 고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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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중호(夢中壺)24-3, 113×95.5㎝ Acrylic on plaster and canvas, 2024. 사진제공=가나아트.
“만약 세계가 진실로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한 덩어리의 모습(一合相)일 것인데….1)”
저 무량한 우주질서를 끌어안은 허공중 극사실화 ‘몽중호(夢中壺)’가 떠 있다. 무문(無紋)이 빚는 넉넉한 젖빛양감 둥그스름한 선이 천연스러움으로 방실거린다. 겹겹 인연법의 얼룩이 아렴풋한, 미묘하게 어긋나 있는 모순의 밸런스. 그 결속의 호흡에 흐르는 오오 시간의 무게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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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항아리, 117.5×92.5㎝ Acrylic on plaster and paper, 2013. 사진제공=가나아트. |
◇한국인의 마음 그 존재론적 시각문화
화면은 가장 한국적 조형미를 꽃 피웠던 조선후기 ‘백자 달항아리(白瓷壺)’가 작업의 모티브이다. 마치 하나의 장면처럼 저 광대무변에 띄워 다의적 해설의 맛을 열어놓아 장자의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새 붕(鵬)이로 변하여 남쪽바다 천지(天池)로 날아간다는 기막힌 스토리와 오버랩 된다.
“붕이 남쪽바다로 움직여서 가면 파도가 3천 리(里)나 튄다.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면서 위로 9만 리나 올라가서 여섯 달을 가서는 멈춘다.(鵬之徒於南冥也, 水擊三千里. 摶扶搖而上者九萬里, 去以六月息者也.’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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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접몽(胡蝶夢), 230×420㎝ Acrylic on plaster and canvas, 2017. 사진제공=가나아트. |
고영훈 화백은 “나의 달항아리 ‘몽중호’는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궁극적으로 결정되어지는 것이 마음에 의해서이듯 그 통로이자 과정의 결정체인 ‘그 마음’의 그림을 대변하는 것과 같으리라. “제주의 자연과 인문학적 공간 거기서 나타나는 우리네 삶의 순수가 유년의 기억에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것은 제주인과 어머니의 사랑 더 나아가 가장 한국적 풍토성의 미감에 대한 추적으로 바로 내 작업의식의 원천이다.3)”
허공에 두둥실 떠 있는 생동의 달항아리와 여백미가 선사하는 염원의 공간은 심도의 조형세계를 담보해 내며 일루전현상학의 공간감을 불어넣는다. 유·불·도교 등 복합적우주관과 검박한 품격의 맥(脈)을 이어온 미의식이 내재된 ‘몽중호’는 혼(魂)의 기운이 흐르는 한국인의 존재론적 정체성을 아우른다. 동시에 천인합일우주관의 정취를 품은 한국현대미술의 새로운 시각문화를 제시하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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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접몽-시간을 삼킨 달, 263×278㎝ Acrylic on plaster and canvas, 2017. 사진제공=가나아트. |
◇순백미감이 껴안은 비애감 아 수선화
일체 화사첨족(畫蛇添足)을 배제한 담백한 여백(餘白)위로 생의 비애감을 껴안은 천엽(千葉) 꽃잎이 천진스럽게 해풍에 드러눕는다! “수선화는 과연 천하에 큰 구경거리입니다.‥그 꽃은 정월 그믐, 2월 초에 피어서 3월에 이르러서는 산과 들, 밭두둑 사이가 마치 흰 구름이 질펀하게 깔려 있는 듯, 또는 흰 눈이 광대하게 쌓여 있는 듯합니다.4)”
[참고문헌]
1)禪으로 읽는 금강경(金剛經), 김태완 번역 및 설법, 침묵의 향기.
2)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편, 송영배 역주, 비봉출판사.
3)고영훈 작가, 제주와 어머니 그리고 한국미 여정, 2024.
4)추사 김정희 ‘완당전집 제3권, 서독(書牘)’, 한국고전번역원 임정기 譯, 1995.
[글=권동철, 10월5일 2024, 인사이트코리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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