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 IN]단색화가 신기옥‥통찰의 힘 필연의 귀환[Dansaekhwa painter Shin Ki Ock,갤러리 비선재]
전시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신기옥 화백. 사진=권동철.
“태양의 불이 흩어져버리는 한, 그것은 우리의 생명의 불에 작용하지 못한다. 그 응집은 우선 처음에 자신의 물질화를 낳고, 다음에 순수한 실체에 그 역동적 가치를 준다. 근원적 정령들은 원소에 의해서 ‘끌어당겨지는’ 것이다. 더욱 조그만 은유를 쓴다면, 그러한 ‘인력(attraction)’이 ‘우정’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우리는 이와 같은 화학(化學)이 있은 후에 심리학에 도달하는 것이다.1)”
전시전경. 사진=권동철. |
물안개 걷히자 어느새 풀잎들이 아우성치듯 연록 숲으로 물들여 놓았다. 길이 열리자 애잔히 머뭇하던 봄볕이 물의 품으로 빠르게 스며들고 물과 빛이 섞이는 공간엔 거품이 부풀다 이내 사라졌다.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 쇼스타코비치 피아노협주곡2번(Op.102.Andante)이 무심한 시간을 품은 채 강바람 따라 아스라이 심상을 파고든다. 유년시절 명주를 짜시던 인애(仁愛)의 어머니, 삶의 파노라마가 갸륵한 영혼의 선율이 되어 물빛 마티에르를 이루는 울림 속 희미하게 서성이는 ‘나’에게!
전시전경. 사진=권동철. |
한 점(點)이 된 물방울이 해맑게 창을 두드린다. 경계를 허문 물과 점이 하나의 호흡으로 배어드는 화폭. 신기옥 단색화 내재율을 관조하다 불현 듯 마음의 부조리(不條理)를 뛰어넘는 우직한 한 사내의 일생이 불현 듯 오버랩 된다.
“인간이 그의 삶으로 되돌아가는 이 미묘한 순간에 시지프는 자기의 바위를 향하여 돌아가면서 서로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이 행위들의 연속을 응시 한다. 이 행위들의 연속이 곧 자신에 의해 창조되고 자신의 기억의 시선 속에서 통일되고…바위는 또 다시 굴러 떨어진다.2)”
전시전경. 사진=권동철. |
◇직선의 합체 문인화적 미의식
화면은 물질이 만들어 내는 요철의 선(線)과 나이프궤적 흔적들이 집적되며 생명에너지를 표출한다. 겹침과 축적의 깊이감이 우려내는 다이내믹한 상하 수직선의 합체가 침잠되면 마침내 부분과 전체의 상호작용이 배어나온다.
귀환(歸還)의 깃발에 펄럭이는 유기적 반복과 순환의 필연, 1960년대 싹튼 한국현대추상미술의 맥락과도 깊게 연동되는 한국적 회화본질에의 물음들, 조선시대 올곧은 선비정신의 문인화적 미의식에 대한 사상(事象)의 열망….
전시전경. 사진=권동철. |
이 맥락에서 신기옥 단색화 ‘Line Rhythm’ 본령엔 한국의 유교(Korean Confucianism) 그 질서(秩序)의 도덕성이 스미어 있다. 이 원리는 가장 한국적인 아이콘에 대한 탐구이자 동시에 컨템퍼러리 한 감각이다. 실체와 정신을 연결 짓는 이 현상학에 신기옥 단색화는 심원한 수행성의 사의(寫意)라는 통찰이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꽃 붉으니 억지로 영산홍을 이름 한 것(花紅强字映山紅), 품격은 본래부터 한 가지가 아니라네(品格元來自不同). 화수(火樹)의 그림 속에 또 하나를 보충하니(火樹圖中須一補), 봄바람의 꾸밈새는 공력이 따로 있군(別有春風點施工).3)”
전시전경. 사진=권동철.
◇일상의 휴식 근본에 대한 영감
아 가없는 하늘…. 저 허공의 시공간으로 집착을 벗어던진 행렬인가. 아상(我相)을 깬 찰나의 명상이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설 때 오오 낯선 세상을 두리번거리며 봉오리를 연 홍매화 향(香)은 또 어찌할 것인가!
“유년시절 어머니가 짜시던 명주(明紬)에 내재된 운율과 정신성이 환생되는 것처럼 내 그림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나는 문명이 발달할수록 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자각은 커진다고 여긴다. 나의 작품이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e) 현대인에게 휴식 같은 격려가 되고 자신의 뿌리에 대한 영감으로 발현되기를 소망한다.4)”
전시전경. 사진=권동철. |
한편 서양화가 신기옥(申基玉,1941~)은 전북부안출신 화가로 전주고(36회) 졸업했다. 이번 ‘On Spiritual Resonance(영혼의 선율)’초대전은 서울 한남동소재, 갤러리 비선재(Gallery Bisunjae)에서 3월11일 오픈하여 4월30일까지 성황리 전시 중이다.
[참고문헌]
1)물과 꿈-물질적 상상력에 관한 시론,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지음, 이가림 옮김, 문예출판사.
2)시지프 신화(Le Mythe de Sisyphe),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김화영 옮김, 민음사.
3)영산홍,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시, 완당전집(阮堂全集) 제10권, 신호열 역, 1986.
4)신기옥 작가, 나의 단색화 ‘Line Rhythm’, 2023.
전시전경. 사진=권동철.
[글=권동철, 3월18일, 2024. 인사이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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