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한국]서양화가 류영신‥우주가 빚은 무한시간의 파노라마[RYU YOUNG SIN,류영신 작가]
류영신 작가 그곳은 고요의 대지 잠잠한 바다 . 미네랄이 발산하는 현란한 윤기가 이곳저곳에 부딪힌다 . 묵직하거나 때론 순백에 남겨진 첫 발자국처럼 생생한 빛깔은 강렬하고 얼음장 같은 촉감의 바닷물이 물거품을 몰고 스며들었다 . 어느 순간 응결 된 자국에 드러나는 대자연의 표정은 무덤덤하다 . 이를테면 동굴 틈새로 들어온 한 줄기 빛이 미로의 연결고리를 비추는 유려한 곡선은 생경한 물체의 윤곽들을 서서히 드러낸다 . 화면은 사물을 확대해 제시하는 클로즈업처럼 뭔가 곧 대자연의 장엄한 파노라마가 펼쳐질 직전의 미스터리하며 불투명함을 자아내는 흡인력으로 묘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 이미지들은 언뜻 규칙적인 배열결정구조의 원소처럼 유사하게 보이지만 유기적 체계의 사변적 뉘앙스를 풍긴다 . 예측 불가능한 현상 속 카오스의 질서처럼 흘러내리거나 깎이는 등 미세한 이동이 포착되는 그 울림은 어떤 징후를 감지하게 한다 . 고목의 숭숭 뚫린 구멍 또는 수직으로 깎여진 암벽 속에 곧 지표로 쏟아질 마그마나 끝이 보이지 않게 분출할 것 같은 불덩어리가 꿈틀대는 고요처럼 . 동시에 거대한 화산 폭발이 원시림을 뒤덮은 정지된 시간이 아니라 침잠해 있는 듯 변동에너지를 품고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시간의 무한성을 목격하도록 인도한다 . 검은 색채 위에 미끄러지듯 지나가는 번들거리는 빛은 화면의 고고함을 더욱 끌어올린다 . 바흐의 무반주 첼로선율 그 광활한 감정의 중저음이 느리게 지나간다 . 이 추상적 심상은 생사의 허무마저 놓아 준 그루터기에 한줄기 바람을 불러 세월의 책장을 스르르 넘긴다 . 작은 돌 틈 사이 톡톡 작은 물방울이 떨어지고 부유하던 꽃씨가 내려앉는다 . 육중한 우울을 딛고 피어난 매혹의 꽃잎은 아름답지만 슬픔이 배인 쇼팽의 피아노 선율에 눈시울을 붉힌다 .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 하양대지를 품을 수 있는 것인가 . 차라리 그것은 완전한 해방감으로 차오른 침묵 , 햇살이 쏟아져 조금씩 뾰족하게 드러나는 활력이기도 하다 . ...